■ 장편소설 ‘아이들의 집’ 출간한 정보라 작가

 

공동양육 보편화된 근미래 그려

편의 보장된 세상서도 범죄 존재

 

불의와 맞서 싸우면 차별 받아

계속 살 수 있는 현실 만들고파

정보라 작가는 올해에만 소설 2권과 번역서 3권을 출간했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사에서 만난 그는 “오랫동안 작업한 작품들의 출간 시기가 겹쳐서 굉장히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된다”며 웃었다.  박윤슬 기자
정보라 작가는 올해에만 소설 2권과 번역서 3권을 출간했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사에서 만난 그는 “오랫동안 작업한 작품들의 출간 시기가 겹쳐서 굉장히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된다”며 웃었다. 박윤슬 기자

2022년 ‘저주토끼’가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후보에 선정된 이후 소설가 정보라의 한 걸음 한 걸음은 한국 SF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023년 전미도서상 최종후보 선정, 독일 라히프치히 도서전 수상 등이 잇따라 화제가 됐다. 올해는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로 세계적 SF 문학상인 필립 K 딕 상 최종 후보에 한국인으로선 최초로 오르기도 했다. 정 작가는 “(상) 불발 전문작가”라며 몸을 낮췄지만 부쩍 커진 인기와 관심을 입증하듯 지난 5월의 절반을 프랑스·호주·폴란드 등을 누비며 보냈다.

정 작가는 그 와중에도 번역과 집필을 쉬지 않았다. 올해에만 번역서 세 권을 출간했고, 전작 이후 약 1년 만에 또다시 장편 ‘아이들의 집’(열림원)을 펴냈다. 또 사회 현안에도 주의를 놓치지 않는다. 지난 9일 문화일보와 만난 그는 “차별 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함께 오체투지에 나섰던 동지들이 기소돼 2차 공판에 다녀왔다”고 애써 웃어 보였다.

“꿈을 꿨어요. 한 집에 아이들이 모여 살고 있었죠. 그중 한 아이를 부모가 데리러 왔는데 따라가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그 뒤로 귀신이 등장하고 살인이 펼쳐지는 스릴러는 잠에서 깨고 나니 기억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나오는 장면만큼은 지워지지 않아요.”

소설은 아이를 낳기만 하면 양육은 얼마든지 사회에서 책임져주는 ‘공동양육’이 보편화된 가까운 미래를 그린다. 장애, 인종 등과 상관없이 양육교사와 아이들, 로봇이 어울려 지내는 가상의 국립보육시설이 이 소설의 무대다. “국가는 여전히 애를 일단 낳으래요. 아무 대책도 없죠. 적어도 100명의 아이는 태어나야 30명의 교사가 있는 현행 초등 교육 체계가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식이에요. 러시아에 살고 있는 친구가 팬데믹 때 국가에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동들의 식재료를 보내줬다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한국은 뭐가 부족해서 못하지?’라고 생각하며 공동양육을 그려봤죠.”

책 속에는 조산아의 생존을 돕는 인공자궁 기술, 팔다리가 없는 장애인의 이동을 돕는 이동보조기기, 각종 인공지능(AI) 로봇 등 다양한 신기술이 등장한다. 심지어 정 작가는 거주지를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냈다. “집을 마련할 수 없어서, 도시에 있는 직장에서 일하느라 아이를 포기할 필요가 없는 곳이에요. 거주지를 정하면 그에 맞는 주택을 임대해 주고 필요한 집안 환경도 제공하죠. 현실에 등 떠밀려 발생하는 비극에 다른 선택지를 주고 싶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세계에도 아동학대, 납치와 불법 해외 입양 등의 비인간적 범죄가 여전히 존재한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위 부스를 지킬 때면 항상 ‘몸자보’를 한 채 국회를 한 바퀴 도시는 분이 계셨어요.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피해자셨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피해자 중에서는 저와 비슷한 나이대, 서울의 같은 동네에 사셨던 분도 있어요. 양천구 아동 학대 살인사건, 구미 아동 유기 사건 등 학대도 만연하죠. 불법 해외입양 사례도 너무나 많아요. 모두 소설에 녹였죠.” 특히 작가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례가 있다. 한 입양아가 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으나 경찰은 과거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20년 동안 직접 수소문해 아버지를 찾아냈다. 경찰서에서 3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애타게 찾던 사이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소설에도 이런 답답한 상황이 펼쳐진다.

소수자와 지속 연대하는 작가가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고치고 싶은 조건도 있을까. “차별금지법이죠. 구미의 박정혜 동지는 500일이 넘도록, 세종 호텔의 고진수 동지는 100일 넘도록, 한화오션 앞 노동자들은 90일 가까이 고공 농성 중이에요. 이겼으면 좋겠지만 혹시 포기하는 순간에는 노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디에도 다시 취업할 수 없어요. 불의에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차별받아 삶이 파괴되지 않고 계속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장상민 기자
장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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