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경 사회부 차장

한국에서 ‘공공의료’는 논쟁적 사안이다. 진가를 조명받을 수 있는 기회는 코로나19 사태나 의사집단파업 등 국가적 위기뿐이다. 정부 비상진료체계에 투입돼 감염병 치료 최전선에 나서거나 의사들이 이탈한 빈자리를 메우면서다. 평소엔 민간병원이 꺼리는 취약계층 진료와 필수의료를 도맡는다. 늘 ‘착한 적자’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본 논리는 어김없이 개입된다. 공공의료 강화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투자에선 찬밥 신세다.

기실 외국에는 공공의료란 말 자체가 없다. 공공과 민간병원으로 나눠지지도 않는다. 의료 본질인 공공성이 당연시돼서다. 국방과 치안, 교육처럼 의료는 공공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에 모든 의사가 공공재다. 대다수 의료서비스는 공공의료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한국 의료 발전은 민간병원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민간병원은 의료보험 도입 이후 급증한 의료 수요를 다 받아냈다. 그만큼 의존도는 커졌다. 정부는 의료를 시장에 맡겼다. 의료는 상업화됐다. 의료 행위는 비급여진료와 불필요한 검사 등을 앞세워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공공성은 훼손됐다. 시장 실패도 터져 나왔다. 흉부외과, 소아과, 외상외과, 산부인과 등 돈이 안 되는 진료과는 절멸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공공의료가 정책 대안으로 등장한 건 이때부터다.

공공의료는 한 나라 의료의 기초체력이다. 현주소는 초라하다. 국내 의료기관 중 민간병원은 94.5%다. 공공병상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평균 71.5%) 중에서 꼴찌다. 의료 영리화가 가장 심하다는 미국조차 공공병상 비중은 약 30%다. OECD 국가에선 공공병원이 의료 기준을 만들고 민간병원이 이를 따른다. 한국은 정반대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병원이 표준이다.

지난해 공공성이 망가진 한국 의료의 민낯이 드러났다. 국민은 ‘미래 의사’들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환자들을 어떻게 버리는지도 지켜봤다. 의대 교육과 의사공급 체계를 바꿔야 한다면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쏟아졌다. 새 정부에 온갖 특혜를 요구하면서 집단휴학 중인 의대생들이 지역·필수의료에 종사할 리 없다. 미용의료에서 돈맛을 본 전공의들이 필수의료로 돌아올 리도 만무하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의사 연봉은 높아진다. 하지만 지역에선 7억∼8억 원을 줘도 의사를 구할 수 없다. 연봉만으로 의사를 유인할 수 없단 얘기다. 의사 양성 방식을 뜯어고쳐야 하는 이유다.

공공의대가 의료개혁 화두로 다시 떠올랐다. 유럽과 캐나다 등은 공공의대를 운영한다. 학비까지 주면서 사명감 있는 의사로 키운다. 지역 근무를 전제로 공공의료 인력을 뽑는 것이다. 의료공공성이 상실되면 사회적 비용은 커진다. 이미 수차례 겪은 일이다. 정부가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한 민간병원에 준 손실보상금은 8조 원 이상이다. 모두 일회성 비용이다. 민간병원은 전체 코로나19 환자의 약 8%만 돌봤다. 그 예산의 절반만이라도 공공의료에 투자됐다면 의정 갈등 탓에 의료 체계가 마비되진 않았을 테다. 공공의대 출신 의사가 배출되면 의료계엔 새로운 흐름이 생긴다. 돈보다 생명이다. 정교한 각론이 필요한 때다.

권도경 사회부 차장
권도경 사회부 차장
권도경 기자
권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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