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K-방산 세계 시장에서 급성장
첨단무기 반도체는 수입 의존
핵심 부품 국산화율 낮은 수준
기술 있지만 시장성 없어 문제
국방반도체 사업단으론 부족
통합적 거점 R&D 시스템 시급
최근 약 9조 원 규모의 K2 전차 폴란드 수출이 가시화하면서, 우리나라 국방산업의 성장세는 다시 한번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KF-21 전투기 등 다양한 무기체계가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고, ‘K-방산’은 우리나라 수출의 새로운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눈부신 성과의 이면에는 간과된 약점이 있다. 첨단 무기체계의 두뇌에 해당하는 반도체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레이더, 유도무기, 항공전자 시스템, 인공지능(AI) 기반 표적 추적 등의 핵심 부품에는 고신뢰 반도체가 필수지만, 이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국내 산업 기반은 아직 미비하다. 특히 전력·통신용 반도체, 센서 시스템온칩(SoC) 및 AI반도체 등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은 낮은 수준이다.
국방 반도체를 수입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관련 기술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센서 SoC, 신호처리 칩, 통신 및 전력 반도체, AI반도체 등은 국내 팹리스(설계 전문) 기업과 연구기관이 충분히 자체 설계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비용에 비해 국방 반도체 시장의 규모가 작은 데다 대부분 소량 다품종 제품이다. 국방 반도체는 높은 신뢰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개발부터 인증까지 들어가는 시간이 상업용 제품에 비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또한, 개발한 반도체의 시장성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쉽게 진입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국방 반도체 개발의 또 다른 장벽은 반도체를 제조하기 위한 파운드리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국방 반도체는 최신 초미세 공정보다 65∼180나노급 레거시 공정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국내 반도체 기업은 2∼5나노급의 초미세공정 개발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어 레거시 공정을 위한 새로운 투자는 부족하다. 초미세 공정은 시장이 급속히 확대되는 반면 레거시 공정의 시장 규모는 다소 정체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많은 국내 팹리스 기업이 레거시 공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해외 파운드리를 이용하고 있다. 국가 안보의 차원에서 안정적으로 국방 반도체를 생산할 국방 전용 파운드리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공공재 성격의 산업으로, 정부와 공공 부문이 초기 생태계를 이끌고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다행히, 정부는 이러한 위기 인식을 바탕으로 국방기술진흥연구소 산하 국방반도체사업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방 반도체 개발을 위한 연구 과제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국방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연구 과제를 통한 핵심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하는 수준을 넘어,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체계적인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즉, 국내에서 설계·평가·검증·제조는 물론 응용 소프트웨어 및 시스템 개발, 그리고 인력 양성까지 포괄하는 통합적인 산업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핵심 기술 개발과 생태계 조성을 주도할 국방용 반도체 거점 연구·개발(R&D) 연구소’가 필요하다. 이 연구소는 산학연(産學硏)이 함께 참여해 AI·센서·통신·보안 반도체 등 방산 핵심 분야의 중장기 기술 로드맵을 짜고, 실용화를 중심으로 한 기술 개발과 양산 인프라까지 연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국방 반도체 육성의 중요한 파급효과는, 우리나라의 취약한 시스템반도체 산업과 AI반도체 산업을 견인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자율 무기체계나 영상인식 기반 정밀타격 시스템에 적용되는 AI반도체는, 향후 민간에서 자율주행, 드론, 스마트시티, 산업 자동화 등 다양한 분야에 재활용될 수 있다. 특히 국방 분야는 상업 분야보다 훨씬 높은 신뢰성·보안성·실시간성과 극한 환경 대응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반도체 기술을 검증하고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겪었던 생산 차질처럼, 국방 반도체의 해외 의존은 전시에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국방 반도체 자립을 위한 거점 연구소와 생산 기반을 구축할 때다. 이것이 한국형 국방 반도체 생태계를 주도하고 AI·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성장까지 이끄는 플랫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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