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6개월간 시범운영 결과
사고위험 증가해 도입 접었는데
서울 등 국내 지자체 10곳선
여전히 내비에 신호 정보 제공
“시범운영 결과와 정책 엇박자”

과속·신호 위반 증가 속에 경찰이 이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전국 4곳에 차량 신호등 잔여시간 표시장치를 시범 운영했으나 사고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나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서울 등 주요 지역에선 차량 내비게이션을 통해 차량 신호등 잔여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일관성 없는 정책이 도로 위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17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9월 경찰청 교통안전심의위원회는 차량 신호등 잔여시간 표시장치를 도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차량 신호등 잔여시간 표시장치는 윤석열 정부에서 정책과제로 선정됐다. 이에 경찰은 지난해 대구 1곳, 천안 2곳, 의정부 1곳 등 전국 4곳의 교차로를 선정해 6개월 동안 시범운영을 했다.
시범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도로교통공단이 지난해 12월에 작성한 ‘차량 신호등 잔여시간 제공에 따른 운전자의 교차로 운행 행태 분석 연구’에 따르면 잔여시간을 보여주는 것이 이전보다 정지선 위반율이 약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지선 통과 속도도 높아졌다. 연구팀은 “추돌사고, 직각충돌, 차량-보행자 간 충돌 가능성 유발 및 사고 심각도 증가 등 교통안전 측면에서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고 결론 내렸다.
경찰청에 따르면 신호 위반은 2019년 203만5464건에서 2023년 381만7206건으로 두 배가량으로 증가했다. 속도 위반 건수도 같은 기간 1241만2926건에서 1771만6342건으로 42.7% 증가했다.
표시기의 부작용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됐다. 1980년대부터 차량 신호등 잔여시간 표시기를 설치했던 중국은 교통사고 위험이 증가하자 2020년부터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신호기를 제거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위험성이 확인돼 도입 중단된 차량 신호기 잔여시간 제공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여전히 실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은 카카오모빌리티를 통해 서울·인천·대전·대구 등 국내 10개 이상 지자체의 주요 교차로에서 실시간 신호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2022년 3월 내비게이션에서 신호등 잔여시간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정보 제공을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예측 출발 및 과속을 막기 위해 신호가 바뀌기 직전 5초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잔여시간 표시장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결과가 있었지만 잔여시간 제공 자체는 운전자에게 편의를 제공한 측면이 있어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교통법규 위반이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이 같은 교통정책 엇박자가 도로 혼란을 가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시범운영 결과 해당 신호등을 도입하지 않기로 했으면 공모사업도 철회하고 내비게이션에서 관련 정보도 제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맞는다”며 “시범운영 결과와 엇박자인 정책들이 정책적 일관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지운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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