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로만의 ‘부티크 뮤지컬’
배우 2~3인 출연 소극장 공연
비용 등 현실적인 이유로 시작
오히려 실험적 작품 양분으로
‘어쩌면…’ 토니상 석권 이후로
더 많은 공연 관객 찾아갈 예정

흔히들 뮤지컬이라고 하면 거대한 무대, 수많은 앙상블(합창과 군무를 담당하는 배우들), 웅장한 넘버(뮤지컬 노래)를 기대한다. 이와 달리 토종 창작 뮤지컬로서는 최초로 토니상 수상에 성공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시작은 미미했다. 300석 규모의 작은 극장에 단 3명의 배우가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규모가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대형 뮤지컬의 화려함을 대신할 참신한 이야기와 친밀한 감성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대학로에서는 이미 공식처럼 자리 잡은 ‘부티크 뮤지컬’(소극장 2~3인극)이다.
지난 8일 성황리에 막을 내린 ‘하트셉수트’는 고대 이집트라는 낯선 배경과 여성 배우 2명만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공연 마니아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관람 기록 앱 ‘플앱’에 따르면 이 뮤지컬은 4~5월 가장 많이 본 작품 1~2위를 기록했다. 팬들은 스스로를 ‘모래알’(팬덤)이라고 부르며 N차 관람을 인증했다. ‘타임리프’라는 소재를 활용해 서로 다른 시대에 사는 남녀의 로맨스를 풀어낸 2인극 ‘소란스러운 나의 서림에서’도 평단과 관객의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아는 맛’이지만 익숙한 이야기를 잘 다듬었다는 분석이다.

2~3인이 출연하는 소극장 공연은 대학로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1990년대 연극 ‘불 좀 꺼주세요’ 등을 시작으로 ‘김종욱 찾기’ ‘아이 러브 유’를 비롯한 로맨틱 코미디 작품이 제작되면서 소규모 뮤지컬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다회차 관람과 본격적인 팬덤 문화는 2007년 초연된 ‘쓰릴 미’에서 시작됐다. 무대 위에는 2명의 남자 배우와 피아노 하나가 전부다. 이 작품의 매력은 배우들의 밀도 높은 감정 연기와 서로 다른 페어(연기 조합)에 따른 작품 해석에서 나온다. 최승연 평론가는 “N차 관람이 ‘쓰릴 미’부터 시작된 건 아니지만 경이로울 정도의 문화로 자리 잡은 건 이때가 처음”이라며 “작은 공연의 티켓 파워를 확인시켜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런 작품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제작비 절감 등 현실적인 이유가 배경이 됐다. 신진 창작자들이 도전하는 소형 무대에 대형 쇼비즈니스 자본이 개입할 여지는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한계가 오히려 창작자들로 하여금 발칙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어쩌면 해피엔딩’은 당시 대학로에서도 굉장히 신선했다”며 “자본의 영향력이 비교적 적은 소극장 작품을 통해 뮤지컬의 외연을 오히려 확장시킬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쩌면 해피엔딩’의 성공에 힘입어 이런 뮤지컬들이 더욱 많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16일 막을 올린 뮤지컬 ‘더 크리처’는 메리 셸리의 고전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프랑켄슈타인’은 관객들에게 이미 대형 창작 뮤지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더 크리처’는 ‘괴물’과 ‘박사’ 역에 성별과 상관없이 배우를 캐스팅해 신선한 2인극을 표방한다. 오는 7월 개막을 앞둔 ‘올랜도 in 버지니아’에도 여배우 2명만 등장한다. 이 작품은 생전 연인 관계였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와 시인 비타 색빌웨스트의 이야기를 그린다.
‘가성비’가 있다 보니 대형 뮤지컬을 주로 하던 제작사들도 중소극장 뮤지컬로 눈을 돌리고 있다. ‘프리다’는 멕시코의 유명 화가 프리다 칼로의 일생에 허구를 더한 작품이다. 화려한 무대 세트가 돋보이는 대극장 뮤지컬로 정평이 난 EMK뮤지컬컴퍼니의 첫 번째 소극장 창작 뮤지컬로, 4명의 여배우가 극을 이끈다. 2022년 초연 당시 매 회차 전석 매진이라는 쾌거를 거두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아 올해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김유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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