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상담소

▶▶ 독자 고민
저는 정신건강의학과나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 이 같은 전공을 한 친구가 여러 사람들이 있는 사석에서 “너는 나르시시스트 같아” “경계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런 평가를 부탁한 적도 없고, 심지어 농담이라고 해도 굉장히 모욕적이었어요. 너무 불쾌했지만, 상대는 전문가이고 저는 비전문가다 보니 도리어 말대꾸하면 괜히 제가 방어적인 사람처럼 보일까 봐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이상한 건가요?
A : 비윤리적이며 성희롱과 똑같아… 앞으론 당당하게 지적해야
▶▶ 솔루션
사연자는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가 봐도 부적절한 상황에서 너무 참을성 있게, 조심스럽게 대응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정신건강의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절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정신의학적 용어는 날카로운 칼과도 같아 아무 데서나 휘두르면 사람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나르시시스트’ ‘경계성 성격장애’ 같은 단어는 임상적으로 엄격한 진단 기준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낙인을 찍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이에 전문가일수록 신중하게, 특히 환자와의 신뢰가 전제된 공간에서만 사용해야 하는 표현입니다.
그런 용어를 친구 사이에서, 그것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전문가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그 말이 아무리 ‘조언’이나 ‘농담’이라 해도 명백한 감정적 공격 혹은 심리적 권력의 남용이기도 합니다.
사연자가 느낀 분노와 수치심은 너무도 정당한 감정입니다. 그 상황에서 ‘내가 괜히 예민한가?’ ‘내가 이상한가?’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모습은, 오히려 타인을 배려하는 성숙한 인간의 반응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배려를 나 자신에게도 적용해야 할 때입니다.
상대가 전문가라는 이유로, 그 사람 말이 전부 진리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그 친구가 다시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차분하게 이렇게 말해도 좋습니다.
“나는 네가 나를 묘사하는데 그런 진단명을 쉽게 사용하는 게 불편해. 그리고 내 이 불편함은 네가 혹시나 기대하듯이 네 날카로운 분석에 정곡을 찔려서 느끼는 수치스러움도 아니야. 이건 공개적인 자리에서 모욕이나 성희롱을 당한 사람이 느끼는 불쾌함이나 수치스러움과 같은 거야.”

사연자는 타인의 감정과 분위기를 잘 읽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 민감함은 결코 약점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자산입니다. 다만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는 만큼, 자기 자신을 위한 경계도 지켜줘야 합니다. 상처가 남았다면, 그건 전문가인 상대방이 나에게 내린 진단이 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관계를 통한 ‘권력의 상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상처에 침묵이 아니라, 당당한 자기 존중의 말로 응답할 시간입니다.
권순재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정보이사·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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