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토가 붉어가는 속도로 너는 늙고 있다// 다변은 대답이 아니라는 걸 알 때쯤/ 멀리 온 것이다// 푸른 채 저절로 붉어지는 토마토// 누구나 시대의 식민지가 되고 싶지 않아/ 붉은 색은 저절로 왔겠니// 유머는 간결할수록 힘이 있는 거 알아
- 이규리, ‘농담’(시집 ‘우리는 왜 그토록 많은 연인이 필요했을까’)
퇴근해서 집에 오면 한밤이다. 운영하는 서점 문을 늦도록 열기 때문이다.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미련이라면, 피곤한 몸으로 생산적인 일을 더 해보려는 것 또한 미련함이다. 다 포기하고 눕거나 앉아서 잘 때까지 유튜브나 들여다본다. 아니 그랬었다.
요즘은 뛴다. 힘들고 귀찮으니 게을러질까 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옷을 갈아입고 나선다. 운동하지 않으면 쉰 살쯤 크게 후회하게 될 거라는 선배의 무서운 단언 때문이었던 것도 같고, 꾸준히 달리다 보니 눈에 띄게 체력이 좋아지더라 하는 후배의 감언이 그럴듯해서였던 것도 같다. 하여간 어느 날 문득 달려야겠어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오르막을 달리는 게 지구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더라는 이야기를 바람결에 들은 것도 같다. 멀리 다녀올 능력이 안 된다면 힘들게라도 달려야겠다 싶어서 언덕 두 개를 반복해 넘는 코스를 따른다. 처음 며칠은, 역시 달리기는 힘들다, 참 지루하다, 싶었다. 며칠 못 가 그만두겠구나. 읽다 만 어려운 인문서들이나, 쓰다만 일기장들을 떠올렸다. 뜻밖에 이어나가고 있다.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낸 덕분이다.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한 바퀴째엔 문 열었던 마트가 두 바퀴째엔 문을 닫았다든가, 벤치에 앉아 졸던 취객이 어느새 사라졌다든가 하는 정지된 풍경의 변화를 눈치채는 것도 즐겁다. 무엇보다 내 것이 아닐 수 없는 숨소리, 심장박동을 느끼는 이 새삼스러움이 참 좋다.
설령 이 달리기를 그만둔다 해도 쉰 살 무렵 크게 후회할 것 같진 않다. 꾸준히 이어간다 해도 눈에 띄게 체력이 좋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갖 핑계를 대며 맥 놓은 채 시간을 보내는 건 싫다. 무엇이든 해야지.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무척 재미없는 농담 같아.
시인·서점지기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