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진 국제부 차장

전 세계를 관세로 위협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중국과의 무역 협상이 타결됐다며 최종 승인도 하기 전 합의 내용 일부를 SNS에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희토류 7종에 대한 대미 수출을 재개하기로 했으며 미국은 중국인 유학생의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서로를 향해 “약속을 어겼다”고 주장해 교착 상태에 빠졌던 미·중 무역 갈등이 봉합 수순에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불과 며칠 후 중국이 약속한 대미 희토류 수출 기간이 6개월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전 세계가 술렁였다. 보도대로라면 6개월뿐인 한시적인 수출 규제 완화를 트럼프 대통령이 기꺼이 수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 자존심이 걸린 민감한 내용이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수일이 지나도록 이에 대해 반박하지 않고 있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승리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전 세계 정상들을 쩔쩔매게 만드는 트럼프 대통령을 중국이 압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단순하게는 희토류 등 첨단기술과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 공급망의 중요성을 미리 깨닫고 선점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보다 더 자본주의 가치를 사회·경제 정책에 녹여 한 단계 앞서 나간 것이 주효했다.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역사의 종말’에서 소련 붕괴로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자유주의가 완전히 승리했다고 분석했지만, 중국은 특유의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체제를 통해 미국보다 더 자본주의 국가로 변모하고 있다. 브랑코 밀라노비치 등 세계적 학자들이 미·중 경쟁을 자본주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라고 분석하는 이유다.

중국의 자본주의 행태는 능력 우선주의와 경쟁 체제에서 잘 드러난다. 중국 공산당은 ‘공동 부유’(共同富裕·사회 전체가 함께 잘살자)를 내걸면서도 기업가의 극단적 이익 추구를 허용하고 ‘996근무제’(오전 9시∼오후 9시, 주 6일 근무), 무(無)정규직(정년보장) 시스템, 연공서열이 아닌 오직 성과에 기반한 업적금(성과급) 지급 등 극단적인 경제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 고소득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상속세나 재산세도 없다. 소득세도 최고세율(45%)은 높지만, 과세표준이 높고 공제가 많아 실제 부담은 미국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파악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인재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제한 없는 수월성 교육은 중국을 2년 연속 미국을 누르고 세계 1위 과학연구 역량국가(2025 네이처 인덱스 조사)로 발돋움시켰다.

첨단기술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당하고 있는 한국이 상황을 역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중국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부터가 중요하다. 중국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학과 교수는 “중국에선 능력이 있으면 그만한 부를 가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외부 간판일 뿐 속내는 미국보다 더 자본주의적 국가”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성과를 중시하는 중국에 맞서는 우리나라 경쟁력은 무엇일까. 적어도 평등주의와 워라밸 중시 풍조는 아닌 듯하다.

황혜진 국제부 차장
황혜진 국제부 차장
황혜진 기자
황혜진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1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