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범 산업부장
일본도 韓 중처법 뜨거운 관심
게이단렌 “형사처벌 억지력 無”
산재死 급감 제조 쇠락 탓도 커
한국, 일본보다 더 큰 위협 직면
기업 사기 바닥에 中 도전 거세
정부, 기업가정신부터 살려야
이웃 나라 일본도 한국의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최근 일본 도쿄 후생노동성에서 만난 레이 요시다 산업안전보건 정책기획과장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사업주)과 50억 원 이하 벌금(법인) 규정을 두고 있는 한국의 중처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일본에 비해 매우 징벌적인데 얼마나 억지력을 발휘할지 오히려 묻고 싶다”고 되물어 왔다. 일본은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 엔(약 471만 원) 이하의 벌칙 규정만 두고 있다며, (2022년 1월부터 유례없는 제도를 도입한 이웃 국가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의 시게야 스즈키 노동법제본부장은 “억지력이 있을 리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일본도 과실이 있을 경우 현장 책임자를 처벌하고 있지만, 그 때문에 산업재해가 줄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일본은 1972년 예방적 노력을 의무화한 노동안전위생법 제정 이후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크게 감소한 상황이다. 1960년대만 해도 한 해 사망자 수가 6000명을 웃돌았지만, 현재는 700명 선까지 떨어졌다. 근로자 수가 5300만 명으로 한국의 2배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일본의 한 해 사고 사망자 발생 비율은 한국(2024년 기준 589명)보다 낮다.
중처법 논란과는 별개로, 이 같은 변화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일본의 산업구조 변화는 우리에게 또 다른 시사점을 준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도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1990년 초 버블경제 붕괴 이후 일본의 산업구조는 상전벽해처럼 바뀌었다. 1970년대만 해도 산재 사고가 상대적으로 빈번한 2차 산업 비중이 절반가량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20%대까지 떨어졌다. 대신 서비스·금융 등 3차 산업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재계 총리’로 불리는 게이단렌 신임 회장에 쓰쓰이 요시노부(71) 전 닛폰생명보험 회장이 금융회사 출신으론 처음으로 지난달 취임한 것도 이 같은 산업구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조왕국의 몰락은 노사관계도 바꿔 놓았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극단적인 파업으로 치닫는 경우가 드물다. 일본 현지에서 만난 오학수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일본 정부 출연기관) 특임연구위원은 “한국과 일본의 노사관계를 비교하면 스폿(일시적) 위기 대응과 장기적 신뢰 관계로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와 일본제철의 노사관계를 비교하는 연구를 한 적이 있는데, 포스코는 일본제철의 장기적 신뢰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고 봤다. 한국 노사는 위기 때만 뭉친다는 얘기다. 그나마 한국 대기업집단 가운데는 LG의 노사관계가 장기적 신뢰 관계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했다.
한국도 흥망성쇠의 역사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일본과 차이가 있다면 중국의 도전과 위협 속도가 훨씬 빠르고 전방위적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20∼30년에 걸쳐 반도체·전자·조선 등 주요 산업의 패권을 일본으로부터 넘겨받았다. 중국은 불과 10년 만에 전기차·디스플레이·조선·철강·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 전반에서 한국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AI)과 우주, 군사 분야까지 영향력을 빠르게 확대해 간다.
더 큰 위협은, 한국 기업이 시들어간다는 점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지난 17일 발표한 2025년 국가 경쟁력 평가(69개국 대상)에서 한국 기업의 효율성 순위는 23위에서 44위로 21계단이나 추락했다. 특히 경영 관행(28→55위)과 태도·가치관(11→33위), 기회·위협 대응력(17→52위) 등에선 낙제점을 받은 게 뼈아프다. 기업인이 의욕을 상실한 채 경직화했다는 진단이다. 기업인을 형사처벌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중처법 등과 같이 기업의 발목만 잡아온 낡은 규제와 정치가 결국은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핵심 DNA인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기업가정신의 씨를 말려버린 결과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3일 재계와 만나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의 핵심은 경제이고, 그 중심은 기업”이라고 공언했다. 핵심은 제대로 짚은 셈이다. 문제는 시간과 각론이다. 한 그룹 총수는 “최후의 보루인 반도체조차 중국과의 격차가 2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새 정부의 진정성과 속도전 여부에 먹고사는 문제의 명운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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