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지섭은 한국 연예계에서 특별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다. 그의 별명은 20년 넘게 ‘소간지’다. 간지는 일본어 ‘칸지’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우리말로는 ‘멋’ 영어로는 ‘폼’(form) 정도로 바꿀 수 있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 때 붙은 별명인데, 아직 유효하다. 그리고 여전히 소지섭에게만 허락된 표현이다.
소지섭이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신작 ‘광장’ 역시 그의 이름값, 별명값에 충실한 작품이다. 그가 13년 만에 도전한 액션 하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각적 쾌감이 상당하다. 이는 결과로 입증됐다. 지난 18일 넷플릭스 톱10 웹사이트에 따르면, ‘광장’은 공개 2주 차에 760만(시청 시간을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 시간을 기록, 글로벌 톱10 시리즈(非영어) 부문 1위에 등극했다. 한국을 비롯해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프랑스, 독일, 스위스를 포함한 총 75개 국가에서 톱10에 진입했고, 9개 국가에서 1위를 기록했다.
‘광장’에서 소지섭은 온 몸으로 연기한다. 대사는 최대한 절제한다. 동명 웹툰에서 구현됐던 전설의 킬러 기준은 소지섭을 만나 현실 속 캐릭터로 적절히 구현됐다.
“누아르는 제가 배우 생활을 하는 동안 나이가 들어도 계속하고 싶은 장르였다. 눈빛이나 몸을 쓰는 액션 연기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라고 생각했다. 이번 캐스팅에서 제가 ‘1순위’라는 말을 듣고 정말 감사했다.”
‘광장’ 속 소지섭의 액션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직진’이다. 기준은 대단한 완력과 스피드를 갖췄지만 천하무적 캐릭터는 아니다. 상대의 공격에 찔리고 베이고 나가떨어진다. 그럼에도 물러섬은 없다.
“많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인물이다. ‘멈출 수는 있어도 뒤로 물러서지는 말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1대 다수의 싸움에서는 공간 활용을 잘 하자고 의논하면서 동선을 짰다. 4부 개미굴 시퀀스는 특히 힘들었다. 실제 격투기 선수인 배우 김태인 맞붙는 장면이 어려웠다. 몸에 닿을 때마다 무기처럼 느껴지더라. 몸을 잘 쓰는 배우 이재윤과의 합이 가장 좋았다.”

‘광장’은 ‘한국판 존윅’ 혹은 ‘K-존윅’이라 불린다. 사랑하는 개를 잃은 후 상대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영화 ‘존윅’의 스토리와 죽은 동생을 둘러싼 진실을 밝히고 복수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광장’의 스토리라인이 흡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는 존재한다. ‘존윅’이 총기 액션이 주를 이루는 반면 총기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한국이 배경인 ‘광장’은 피와 살이 튀는 백병전이 백미다.
“‘존윅’가 비교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하지만 차이는 있다. ‘존윅’은 기본적으로 총기 액션이 많다. 반면 ‘광장’은 주먹을 주고 받는 근접전이 바탕이다. 그래서 투박하지만 강하고 임팩트가 강하다. 그런 면에서 완전히 다른 액션인 것 같다.”
‘광장’은 여성 배우가 거의 나오지 않는 선굵은 누아르다. 소지섭 외에 배우 차승원, 추영우 등 평균 신장도 180cm 이상이다. 소지섭은 촬영 전 살을 쭉 빼고 날렵함을 강조했다. 말수를 줄인 남성들의 ‘몸의 대화’를 통해 스토리를 단순화시킨 대신 액션의 묘미를 배가시켰다. 누아르와 스릴러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해외 시장에서 주목받은 이유다.
“몸무게 95kg에서 시작해 촬영 전 70kg 중반까지 뺐다. 대사가 많이 없기 때문에 외적인 이미지와 기준의 감정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기준을 비롯한 등장 인물들이 결코 선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멋지게 나오는 것은 배제하다’고 합의했다. 남자 배우들이 많았지만 현장 분위기는 그리 무겁지 않았다. 제가 평소보다 말을 많이 했다. 주인공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위험한 액션 장면이 많기 때문에 부상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이 대화를 나누며 합을 맞췄다.”
‘광장’은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공개된 상업 콘텐츠다. 하지만 그는 작품성 높은 작품을 소개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지난 2014년부터 영화 수입·배급 사업에 뛰어들었고, 전통이 있는 수입배급사 찬란의 이지혜 대표와 의미있는 작품을 선보였다. ‘필로미나의 기적’부터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미드소마’ ‘유전’ ‘존 오브 인터레스트’ ‘서브스턴스’ 등이 소지섭의 선택을 받았다. 그래서 요즘 그는 ‘시네필들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로 손꼽힌다. 정작 소지섭은 이같은 칭찬에 손사래부터 친다.
“‘찬란’이라는 파트너가 있고, 이지혜 대표님이 계신다. 저는 그냥 너무 하고 싶어서 끼워달라고 해서 같이 하는 정도다. 힘들게 일하시는 분들이 더 주목받으셨으면 한다. 응원을 많이 해주시길 바란다. 제 손은 ‘똥손’이라 믿으면 안 된다. 전문가를 믿고 싶다. 저는 그냥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하고 싶을 뿐이다”
소지섭은 어느덧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평소 과묵한 성격으로 유명한 그는, 소지섭답게 묵묵하게 30년을 걸어왔다. 그 흔한 구설 한번 오른 적 없다. ‘스타’와 ‘배우’ 사이에서 적절하게 줄타기하며 자기 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30년간 이어온 그의 진정성을, 대중은 안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소간지’다.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그의 인장이다.
“30년… 오래 했다. 스스로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해’ 그 얘기는 해주고 싶다. 전 항상 최선을 다한다. 자기 복제 같기도 하고, 새로운 게 없는 것 같기도 해서 쉽지 않다. 30년을 이어온 비결? 모르겠다. 어떤 매력이 있나 본데… 아직 못찾았다. 그래서 힘들지만 계속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안진용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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