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오가와 사야카 지음│지비원 옮김│갈라파고스
홍콩 청킹맨션 보스 탄자니아인
“범죄 손댄 동포도 거부 않는다”
호혜적 태도로 이주자들과 사업
연대 외치며 연대 안하는 세상속
무엇이든 공유하는 사회 보여줘


연대의 목소리가 높지만, 그 결과는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연대하자면서도 ‘나부터’도 아니고 ‘나만’ 고집하니 그럴 것이다. 공유하자는 말도 풍선처럼 부풀었지만, 요즘 공유는 사업 아이템의 수단에 불과한 듯 보인다. 연대하고 공유하는, 이를테면 호혜의 원칙은 우리 사회에서 자취를 감춘 게 분명하다. 다소나마 이런 열패감에 빠져 있는 내게 일본 리쓰메이칸대 연구과 교수인 오가와 사야카의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는 적잖은 기쁨을 안겨준 책이다. 표지에는 호혜, 증여, 분배 이론 등 어려운 말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박장대소까지는 아니어도) 읽기에 재미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물 흐르듯 이야기하면서, 거기서 발견한 호혜, 증여, 분배 같은 심오한 이론들을 논하는 데도 막힘이 없다. 지역을 연구하는 학자이되, 현장에서 그 저변을 철저하게 경험한 태가 확연하다.
청킹맨션(重慶大厦), 홍콩 침사추이에 위치한 1960년대 초 지어진 17층 높이의 이 건물에는 세계 곳곳에서 모인 이민자들과 난민, 불법 이주자들이 넘쳐난다. 사족이지만 한때 한국 극장가를 호령했던 홍콩 영화들, 그중 ‘왕가위 스타일의 정점’이라는 평을 받은 영화 ‘중경삼림’(1994)의 주 무대가 바로 청킹맨션이었다. 저자가 청킹맨션에 도착한 첫날, 그를 맞이한 이들은 짝퉁을 팔려는 여러 인종의 호객꾼들이었다. 저렴한 원룸 하나를 잡고 “청킹맨션의 민족지뿐 아니라 이 이민자들이 창출하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에 대해 연구한 지 한 달, 그가 소개받은 사람은 자칭 타칭 “청킹맨션의 보스”인 탄자니아 사람 카라마였다. 그는 “홍콩과 탄자니아를 연결하는 중고차 브로커”였다. 그와의 만남은 저자를 “홍콩과 중국에 거주하는 탄자니아인들의 장사와 동료들 사이의 일상적인 관계 속으로” 이끌었다.
카라마가 홍콩에 정착한 것은 2003년 12월 말로, 그는 이런저런 사업을 말아먹은 후 “전 재산을 털어 천연석과 비교적 저렴한 케냐항공의 항공권을 구입해” 홍콩에 왔다. 천연석을 팔기 위해 날품팔이도 감내하며 버티던 그가 중고차에 눈을 뜬 것은 2005년 초다. 애초에는 가전제품을 취급했지만, 이내 중고차로 확대했다. 저자가 카라마에 매료된 것은 단지 사업 수완 때문이 아니었다. 사업은 돈을 벌고자 하는 일인데, 그 목적을 쟁취하는 방법이 남달랐다. 우선 청킹맨션의 보스는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았다. 카라마가 중심이 되어 만든 탄자니아 홍콩조합의 창립 멤버 한 명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이들은 시신 운구 비용을 십시일반했다. 120달러, 작다면 작지만 타지에서 삶을 꾸려가는 이들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창립 멤버이니 그럴 수 있다고? 아니다. 조합에는 다소간 법을 위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약을 팔거나 절도,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조합 활동에 공헌하지 않는, 어쩌면 “타자의 리스크”를 함께 짊어지게 될 수도 있지만, 카라마가 이끄는 탄자니아 홍콩조합은 “‘범죄’에 손을 댄 동포를 부정/거부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을 고수한다. 우선 타자의 비즈니스와 삶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데다, (불법) 이주자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자기 책임과 불운 사이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정황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의 방식은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겸사겸사”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이름과 얼굴을 몰라도 한다는 것이다. 연대 혹은 호혜 같은 어려운 말을 수시로 입에 올리는 사람들보다, 카라마를 비롯한 이주자들이 훨씬 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아무도 신용하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는 세계에서 누구에게나 열린 호수성(互酬性)을 기반으로 한 사업 모델과 생활 보장 구조를 동시에 구축하고 있다.”
중고차 브로커는 분명 돈벌이를 위한 일이다. 그럼에도 카라마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이주자들은 호혜적 삶을 살고 있다. 독립독행(獨立獨行)하는 자기 삶을 누군가에게 강요하지 않지만 “문득 던진 아이디어나 SOS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지금 홍콩 청킹맨션의 한편을 채우고 있다. 각자 그리고 함께! 다시, 사족이다. 재미있는 책이라고 해놓고 재미있게 글을 못 쓴, 내 재주가 한탄스러울 뿐이다. 296쪽, 1만8500원.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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