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종 논설위원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관계가 활발할 때 북한지역에서 열리는 남북대화 취재를 위해 방북한 적이 있다. 실무진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남북 간 유선 ‘핫라인’을 설치하는 것이다. 일단 남북회담사무국과 통신이 확보돼야 일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선 전화를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북한이 채택한 통신 기술이 우리와 달라 유선으로만 통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핫라인을 이용할 때면 트로트 음악을 틀어 놓고 상대방이 도청을 해도 알 수 없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첨단 기술이 아닌 트로트를 이용한 비화폰인 셈이다. 지금은 위성망을 이용한 비화폰으로 통신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고 한다.

전두환 정권 때까지만 해도 비화 장비는 주로 군용에만 사용해 왔다. 노태우·김영삼 정권 때부터 대통령과 장관 간 보안 전화망을 운영했고, 지금 같은 스마트폰 형태의 비화폰은 박근혜 정부에서 시범 운영되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상용화됐다. 통화 내용을 암호화해 감청이 불가능하도록 만든 것인데 미국 등 각국 정부는 모두 독자 개발한 비화폰을 사용하고 있다. 상대 국가의 감청을 막기 위한 것인데,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통화 내용을 도청한 것이 폭로돼 외교 문제로 비화한 적이 있다.

비화폰은 현재 대통령 경호처가 관리하는데 대통령과 일부 참모진, 국방부, 국가정보원 등 정보기관 관계자들이 사용한다. 경호처 보유 서버에 통화 기록은 있지만, 내용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비화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부인 김건희 여사와 심우정 검찰총장 등에게도 비화폰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다.

특히, 역대 대통령 중 영부인에게 비화폰을 지급한 사례는 없다. 공적 지위가 아닌데도 비화폰을 지급하고, 김 여사가 검찰 수사를 앞두고 김주현 민정수석과 통화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영부인에게 무슨 비밀이 많아서 비화폰까지 지급했는지 궁금하다. 또, 중립적 위치에 있는 검찰총장에게 비화폰을 지급하고 김 수석이 통화를 했다는 것은 수사 중립성을 위반할 수 있는 일이라 특검 수사 대상일 가능성이 크다. 계엄 전 일반인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게 비화폰이 지급된 것도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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