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의 음악동네 - 보이즈 투 멘 ‘It’s so hard to…‘

‘과거를 묻고 싶다’ 이 문장을 번역하려면 맥락을 살펴야 한다. 상대의 과거를 캐고(물어보고) 싶다는 건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묻어두고) 싶다는 뜻인지 가려야 한다. 결점과 오점은 누구나 있다. 남의 허물은 샅샅이 들추고 나의 과실은 깊숙이 숨기는 건 청문회장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과거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는 개인별, 세대별로 다양하다. ‘내일을 향해서라면 과거는 필요 없지’(신성우 ‘내일을 향해’) 이런 돌격형이 있는가 하면 ‘내 과거 묻지를 마세요. 알아서 무엇 하나요. 지난 일은 지난밤에 묻어요’(김용임 ‘오늘이 젊은 날’) 같은 호소형도 있다. ‘후회하고 있다면 깨끗이 잊어버려 가위로 오려낸 것처럼 다 지난 일이야’(강산에 ‘넌 할 수 있어’) 같은 우격다짐 류가 있는가 하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전인권 ‘걱정 말아요 그대’) 같은 연민 계열도 있다.
교수 시절 ‘뉴스 스토리텔링’이라는 과목을 개설했다. 그때그때 화제가 된 인물과 사건을 되짚어보고 영화나 드라마로 재구성해 보는 수업이다. 세기의 브로맨스 트럼프와 머스크 공동주연의 ‘흔들린 우정’(원곡 홍경민)은 놓치기 아까운 소재다. 두 사람은 사랑이라 쓰고 사업이라 읽는 독특한 문해력을 지녔다. 둘 다 성격이 불같아서 화재경보는 일찍이 예상된 바였다.
좋았던 시절의 명언도 삽시간에 망언으로 틀어진다. 아무리 진심으로 말해도(그리 보여도) 그것이 본심을 이기진 못한다. 머스크는 트럼프의 과거 얼룩을 들춰냈다. 감세·지출 법안에 대해선 역겹고 혐오스럽다(disgusting abomination)고 발언했다. 가만있을 트럼프가 아니다. ‘정신 나갔군’(lost his mind)이라고 곧바로 맞받아쳤다. ‘이별의 종착역’(원곡 손시향)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간밤의 분노가 새벽의 계산을 이기진 못했다. 머스크는 자존심보다 자구책을 택했다.
반성문의 핵심은 ‘지나쳤다’(went too far)로 요약된다. 배경음악으로 비틀스의 명곡 ‘지난날’(‘Yesterday’)이 딱 맞아떨어진다. 지난날은 지나가도 지난 일은 지나가지 않는다. 원래 Yester는 뿌린 걸 거둔다는 뜻에서 유래한 말이다. 오늘이라는 열매는 내가 뿌린 어제의 씨앗이라는 의미다. 한자어 과거의 첫 글자 과(過)는 1. 지나감 2. 지나침을 포괄한다. 머스크의 과도(過度·too far)는 도를 지나간 게 아니라 도를 지나친 거다. 노래에서 모든 잘못(All my troubles)의 원인을 자신의 잘못된 발언(I said something wrong) 탓이라고 후회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트럼프와 머스크는 둘 다 악동 같은 이미지가 있다. 하고 싶은 걸 못 하면 못 견뎌 한다. 그들을 유심히 보면 미국의 R&B그룹 이름 하나가 자동 생성된다.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소년에서 어른이 된다는 뜻이다.

성취도 맛보고 상처도 생겨야 어른이 된다. 살면서 참 어려운(It’s so hard) 건 헤어지는 일, 그중에서도 과거와 작별하는 일이다. 언젠가 나올 영화 ‘투 멘(트럼프 vs 머스크)’ 주제곡으로는 보이즈 투 멘의 노래(‘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가 어떨까. 이런 가사(To be my sunshine after the rain)가 나온다. 어제의 비가 오늘의 햇살을 만든다. 과거를 자꾸 땅에 묻으면 현재가 무덤이 된다. 내일이면 오늘도 어제가 된다. 과거가 현재의 자산임은 자명하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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