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거장 제임스 터렐·안토니 곰리, 韓서 대규모 개인전
설치미술 ‘빛의 마술’ 터렐展
캄캄한 터널 지나면 LED 벽면
관람객, 빛·공간 통해 ‘나’ 인식
‘지각 예술’ 세계 입문하는 기회
현대조각 ‘공간 예술’ 곰리展
거대한 철골 사이 동선 만들어
정지된 조각·감상자 상호작용
돔 속 7개 조각 통해 ‘사유’도

설치미술과 조각이라는 두 영역에서 각각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두 현대미술가 제임스 터렐(82)과 안토니 곰리(75)가 국내에서 아주 특별한 전시를 선보인다. 17년 만에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게 된 터렐은 서울 한남동 페이스 갤러리의 ‘더 리턴즈’(The returns·귀환)를 통해 우리가 빛을 어떻게 소유하고 다룰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대 조각의 거장 곰리는 강원 원주 뮤지엄산에서 개막한 ‘드로잉 온 스페이스’(Drawing on space·공간에 그리다)에서 작품과의 관계 맺기라는 새로운 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또, 안도 다다오와 협업해 상설관 ‘그라운드’도 선보인다. 돔 형태의 실험적 공간으로 이곳에선 발소리와 목소리가 증폭된다. 터렐은 빛으로, 곰리는 조각과 공간으로. 감각을 재배치하고, 존재의 재구성을 시도하는 거장들의 ‘명상 정원’으로 가본다.

◇빛을 보는 ‘나’를 인식하다…터렐이 선사한 ‘지각 예술’= 미국 출신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터렐은 1960년대 중반에 시작된 ‘빛과 공간 미술운동’의 대표 작가다. 최근 페이스 갤러리에서 만난 터렐은 “전통적으로 화가들은 빛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를 고민해 왔다. 그런데 나는 빛 그 자체를 다뤄보고 싶었다”고 했다. 따라서 그가 50여 년 전 화두를 던지고, 또한 주창한 ‘지각 예술’은 그저 예술품을 ‘보고 느낀다’가 아니라, ‘보고 느끼고, 그래서 존재하고 질문한다’로 이어진다. 즉, 빛과 색, 공간을 통해 감상자가 본인의 상태를 인식하는 데에 터렐 작품의 묘미가 있는 것. 예컨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웨지워크’를 보자. 관객은 깜깜한 터널을 지나 거대한 텔레비전 같은 벽면을 마주한다. LED를 활용한 이 설치물은 20분간 천천히 변화한다. 평범한 평면에서 다채로운 빛을 뿜어내며 깊이와 부피감이 있는 입체적 공간으로 바뀐다. 저 안에 실제 물리적 공간이 존재하는지, 그저 빛이 그것을 만들어낸 것인지, 감상자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상상하며 몰입한다. 이 순간을 두고 터렐은 “빛을 소유했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을 처음 경험하는 관람객들은 낯설고 생경한 감각에 종종 어지럼증을 호소하기도 하고, 흥미와 재미를 느끼며 새로운 영감을 받기도 한다. 터렐은 “감각에 스스로를 맡기고 머무르면, 우리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면서 “혼란 속에서 새로운 인식을 발견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에는 ‘웨지워크’ 시리즈의 신작인 ‘더 웨지’(2025)를 비롯해 무한한 공간감을 체험하는 ‘글라스워크’ 연작 4점 등 대형 설치 5점을 선보인다. 이와 함께 판화와 조각,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프로젝트 ‘로든 크레이터’ 과정을 담은 사진 20여 점도 소개된다.
감상자를 작품을 완성하는 마지막 요소로 삼는 터렐만의 독특한 전시 체험, 그리고 명상과 사유로까지 이어지는 지각 예술의 세계에 입문할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는 9월 27일까지 이어진다. 10명씩 관람 가능한 웨지워크는 예약을 통해 입장할 수 있다.

◇말하고 걸으며 ‘나’를 보다…곰리가 열어주는 새로운 감각= 강원 원주 뮤지엄산에서는 곰리의 상설전이 신설됐고, 동시에 개인전을 연다. ‘드로잉 온 스페이스’라는 전시명처럼, 곰리는 정지된 조각, 정적인 공간이 감상자와 상호작용으로 만들어내는 에너지에 집중한다. 예컨대, 비눗방울처럼 덧없는 형상을 금속으로 재현한 조각들 ‘리미널 필드’는 언뜻 사람의 형상 같지만, 뻥 뚫려 있어 작품을 보는 감상자들이 서로를 ‘본다’. 그리고 곰리는 그것마저 작품의 한 요소로 여긴다. 작품과 감상자, 감상자와 감상자 간의 상호작용을 노린 곰리의 시도는 복층 구조로 된 전시장의 아래층에 설치된 ‘오빗 필드 투’(Orbit Field Ⅱ)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전시장 하나를 가득 채운, 복잡한 듯 엉켜 있는 거대한 철골 비눗방울들은 큰 어려움 없이 감상자들의 동선을 만들고, 그 사이사이는 휠체어도 지나갈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전시장 안에 조각으로 ‘큰 그림’을 그려 넣은 곰리의 탁월한 시선과 기술에 감탄하게 된다. 조각, 판화, 드로잉 등 총 48점을 선보인다.

곰리는 이번 전시와 함께, 뮤지엄산에 상설관도 신설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협업한 ‘그라운드’는 돔 형태의 지하 동굴로, 천장 한가운데가 뚫려 있고, 뮤지엄산을 둘러싼 인근 숲을 향해 한쪽 벽면이 완전히 개방된 형태다. 작은 속삭임이나 살며시 내디딘 발걸음도 거대한 울림이 돼 돌아와 감상자는 청각으로 전이된 에너지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 그것은 아주 기묘하고 모순적인 체험이다. 도시와의 단절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지어진 산속 뮤지엄에서, 감상자는 개방된 형태의 돔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소리의 증폭을 통해 다시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라운드는 땅, 지구, 바닥, 근원 등을 뜻한다. 곰리는 “그 모든 것을 말하며, 그 자체로 하나의 감각기관이 돼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그라운드 안에는 곰리의 독창적 캐스트 아이언 조각도 7점 설치됐다. 서 있거나 누워 있거나 웅크리고 있거나 한 사람의 형상으로, 이는 돔에 들어선 감상자에게 어떤 행동이나 생각을 유도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작을 취하고 있기에, 감상자는 각각의 조각 앞에서 자기만의 사고와 감정을 환기한다. 이에 대해 곰리는 “고정된 메시지는 없다. 그저 감상자들이 자기 삶의 에너지를 자각하면 될 뿐이다”라고 전했다. 청조관 전시는 11월 30일까지, 그라운드는 상시 관람 가능하다.
박동미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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