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2005년, 한일 국교 수립 40주년을 기념해 한국 작가 공지영과 일본 작가 츠지 히토나리가 함께 쓴 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화제였다. 양국 여성학자 조한혜정과 우에노 지즈코가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서간집 ‘경계에서 말한다’(1997), 양국 소설가 신경숙과 쓰시마 유코의 서간집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2007)이 있긴 했지만, 양국 소설가가 한 작품을 같이 쓴 경우는 없었다. 그 뒤로도 없었다.

일본에서 유학 중인 한국 여성 최홍과 일본 청년 아오키 준고의 만남, 이별, 재회와 사랑 이야기로 두 작가는 같은 사건을 두고 각자의 시점으로 교차해 썼다. 서울에 사는 공지영과 파리에 살던 츠지가 1년여 동안 1000여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썼다는 것도 화제였다. 이들의 사랑 이별 오해와 화해는 곧 한일 관계에 대한 은유이기도 했다. 홍은 일본에 대해 무의식적 반감이 있지만,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 벽을 뛰어넘는다는 설정이었다.

그해, 국교수립 40주년을 기념한 ‘한일 우정의 해’였지만 양국 관계는 급랭했다. 시마네현이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지정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의 역사 왜곡과 영토 문제를 공개 비판했다. 두 작가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츠지는 주변의 우려와 비판적 시선에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썼고, 소설은 나와 화제가 됐다. 한국에선 초판 5만 부, 일본에선 초판 10만 부가 발행됐다. 지난해엔 동명의 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를 누렸다.

한일 수교 60주년, 문화에서 양국의 협업은 이제 일상이 됐다. 첫 한일 합작 아이돌 밴드 Y2K 데뷔가 1999년. 요즘 유명 J-팝 아티스트 내한 공연은 전석 매진이다. 2022년 송강호에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브로커’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일본 소설을 읽고 자란 한국인과 K-드라마를 보고 K-팝에 열광하는 일본인은 MZ부터 중년까지 그 층이 두텁다. OTT 플랫폼 확산, 글로벌 전략을 위해 협력은 더 긴요해졌다.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스타를 좋아하는 문화적 공유와 소통의 힘은 강력하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처럼 정치적 롤러코스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최현미 논설위원
최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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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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