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어느 회사원이 아침 러시아워를 피하기 위해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집을 나서 이른 시간에 회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모든 회사원이 그처럼 행동한다면 새벽부터 길에서 고생하게 된다. 경제학은 이를 ‘구성의 오류’로 개념화했다. 개인에게 타당한 논리가 반드시 전체에 타당한 것은 아니란 얘기다.

새 정부 들어 지자체는 ‘지역화폐’ 발행에 들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2023. 11. 02) 국회 민생경제 기자회견을 통해 “지역화폐 예산을 증액하고, 중장기적으로 발행과 지원을 의무화해 계속 사업으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한다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누군가가 “제주도 주민이 저축한 돈이 서울의 주택담보대출 재원으로 쓰이는 게 옳으냐”고 선동한다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제주도에서 저축한 돈이 생산성 높은 다른 지역으로 투자되지 못하고 제주도에만 머무른다면 ‘자본의 효율적 배분’은 불가능해진다. 지역화폐 발행도 같은 맥락이다.

지역화폐 발행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낙전 수입’(미사용액)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고속도로 선불카드처럼, 구매했지만 다 사용하지 않은 통행권 잔액은 발행 주체에 고스란히 낙전(이득)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지역화폐를 ‘관리’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 책임자는 ‘측근’이 될 공산이 크다. 지역화폐는 정직하지 않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은 ‘케인시안’의 정책 행태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케인스경제학에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경제의 본질’은 순환이기에 정부 주도로 경제를 돌리면 된다고 쉽게 생각한다. 그렇게 착각하다 보니 ‘추경’에 구조적으로 중독된 것 같다.

국회는 지난 5월 1일 총 13조8000억 원에 이르는 1차 추경안을 통과시켰고, 정부가 집행 중이다. 1차 추경은 민생과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소상공인·중소기업 지원, 신산업(AI) 강화, 체불 근로자 임금 지원”까지 아우르고 있다. 추경 중 약 4조 원은 소상공인 지원 몫이다. 추경 재원 중 5조 원은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조달하고 나머지 7조 원만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만큼 재정건전성을 염두에 뒀다.

1차 추경이 집행 중인데도 ‘20조2000억 원’ 규모의 2차 추경안이 19일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됐다. 22일 여야 지도부의 대통령실 오찬 회동에서 민주당 측은 국민의힘 측에 추경안 협조를 요청했다. 정치에는 임기가 있지만, ‘경제는 흐름’이기에 정치 임기가 기준이 될 순 없다. 민주당은 재정을 ‘화수분’으로 여기는지 재정 폭주를 서슴지 않는다. 민생회복지원금 명목으로 모든 국민에게 15만∼50만 원의 지역화폐를 차등 지급하고, 한편으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배드뱅크’를 세워 소상공인의 채무를 정부가 매입해 소각, 탕감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는 빚을 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세금을 더 걷을 필요도 없다. 다만, 그 부담은 미래세대로 떠넘겨진다. 국민에게는 ‘위축된 경기를 살리는 마중물이 되겠으며, 경기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국민의 재기를 돕는 소중한 희망의 불씨가 되겠습니다’라고 하면 된다. 감언이설은 ‘베네수엘라 특급열차’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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