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 주필
사법부까지 알아서 기는 상황
브레이크 없으면 사고 불가피
與 과유불급 野 와신상담 중요
8개 사건 5개 재판 사법리스크
권력으로 눌러도 되살아날 것
퇴임 때 박수 받는 게 진짜 대책
대통령은 ‘극한 직업’이다. 살인적 일정에 쫓기면서 엄청난 중압감 속에서 시시각각 결단하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 9단이라는 김영삼 전 대통령도 퇴임 때 “영광의 시간은 짧았고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고 술회했다. 그나마 당선에서 취임까지의 기간이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 권력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런 기회도 없이 대통령직을 바로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은 안팎으로 더욱 번잡한 일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 취임 12일 만에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1박 3일 일정으로 참석하는 바람에 고위 참모가 이 대통령 옆에서 코피를 쏟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덕담보다 고언을 앞세우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권력은 민주화 이전의 권위주의 정권들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과 여당은 거의 모든 조치를 ‘법의 이름으로’ 할 수 있다. 검찰청 폐지, 대법관 늘리기, 이 대통령 재판 면제 및 무죄 만들기 입법, 대법원장과 검찰총장에 대한 위협 등은 이미 시작됐다. 국무총리 후보자의 온갖 흠결도,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의 안보관 우려도 뭉개면 그만이다. 장관, 공기업 임원, 정부 영향력 아래 방송국과 관변 조직 인사 등 수천 명에 대한 임면권 행사도 걱정된다. 견제해야 할 야당은 날개 없이 추락하는 중이다. 이런저런 방법으로 야당 의원 7명만 끌어들이면 개헌도 가능하다.
3부(府) 가운데 사법부만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은 권력’인 이유는, 선출 권력인 입법·행정부가 숫자의 힘만 믿고 폭주하는 것을 막으라는 취지다. 그런데 사법부도 흔들린다. 이 대통령 재판은 ‘헌법 제84조에 따른 조치’라는 달랑 한 문장으로 중단됐다.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이 기존 재판의 중단도 포괄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상당한데, 설명조차 없었다. 제68조 2항(대통령 당선자가 판결로 자격을 상실하면 후임자 선거)은 판결에 의한 대통령 자격 상실 여지를 내포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고민도 보이지 않았다. 머지않아 문재인 정부 초기처럼 판사 홍위병들도 나타날 것이다.
삼권분립이라는 제동장치가 허물어지고 있다. 브레이크가 없으면 사고를 막을 수 없다. 한심한 야당과 눈치 빠른 판사들을 보면, 당분간 이 대통령이 스스로 권력 행사를 절제하는 브레이크 역할도 겸할 수밖에 없다. 좋은 반면교사가 가까이에 있다. 독선과 불통 탓에 자폭한 윤석열 전 대통령과 반대로 하면 된다. 역대 모든 대통령이 시작 땐 통합과 미래를 외쳤지만, 실상은 달랐던 것을 보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이 대통령이 어떤 길을 갈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많은 부분이 본인이 하기에 달렸다. 퇴임 때를 상상하는 것은 좋은 내비게이션이 될 것이다. ‘12개 혐의, 8개 사건, 5개 재판’의 사법 리스크를 지금은 권력으로 억누를 수 있지만, 아주 없앨 수는 없다. 신규 대법관을 몽땅 ‘내 편’으로 채우거나, 법을 바꿔 혐의 자체를 처벌 대상에서 뺀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5년 단임 권력의 사이클을 고려하면,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가 상승기일 것이다. 그 2년 뒤인 2028년 4월 국회의원 선거는 내리막의 시작이다. 여당은 급속히 ‘차기’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고, 2030년 대선에 가까워질수록 ‘지는 해’와 ‘뜨는 해’의 위상 격차는 커진다.
진정으로 ‘모두의 대통령’이 되려면, 국익·실용 국정을 펼치려면, 지지층과의 마찰도 감내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외치고 헌법을 수호하려면, 사법 리스크를 지우려 하기보다 퇴임 뒤 재판을 받겠다는 입장을 선명하게 밝혀야 한다. 국민이 국정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 차기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사면을 공약할 것이다. 퇴임 뒤 재판에서의 선처 가능성도 커진다. 반대로, 국민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 어떤 안전장치도 소용없다. 아마 차기 권력을 노리는 여당 내부에서 사법 정의 얘기가 먼저 분출할지 모른다.
현 권력이 대단해도 5년을 넘길 수 없다는 권불오년(權不五年)의 마음가짐은 모두에게 중요하다. 권력을 가진 측은 과유불급 자세로 절제하고, 권력을 내준 측은 와신상담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절제와 인내의 리더십으로 오늘날의 일본 토대를 닦은 ‘인(忍)의 지도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런 인생훈을 남겼다. 서두르지 말라, 화내지 말라, 이기려 하지 말고 지지 않으려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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