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철 前 국방부 차관,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미국발 국방비 증액 요구로 걱정이 일고 있다. 아시아의 동맹국도 나토(NATO) 동맹국에 요구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5%’ 기준을 따르라는 것인데, 솔직히 너무 나갔다. 61조 원인 국방비를 130조 원으로 늘리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하지만 국제관계에 늘 해법은 있기 마련인 만큼 열린 사고를 바탕으로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한 때다.
첫째, 두려워하거나 노여워해서는 안 된다. 지금 세계는 신냉전으로 접어들고 있고, 두 개의 전쟁을 목격하고 있다. 무역장벽은 높아지고 불확실성은 커질 전망이다. 이 모두가 미국의 위상이 전과 같지 않다는 점과 연결된 문제이고, 자국의 힘만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미국의 자구책 중 하나가 동맹국의 국방비 증액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대안을 찾아 풀어갈 일이지, 감정적으로 대처할 일은 아니다.
둘째, 도널드 트럼프 스타일로 접근해야 한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통계는 이기적이고 시간에 따라 변한다. 이를 역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2월 초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을 때 국방비를 두 배로 늘리겠다고 했다. 지난해 GDP의 1.6%를 지출한 일본이기에 3%를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의 기본 입장은 지금도 GDP의 2%, 그것도 2027년까지다. 이에 대한 미국의 실망과 3% 인상 주장에 대해, 지난달 이시바 총리는 “일본의 방위비는 일본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화를 이어가되 자국의 입장을 기준으로 접점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GDP의 2.32%를 사용하고 있고 미국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협상의 공간은 생각보다 넓다.
셋째, 비용 분담(cost sharing)이 아닌 부담 분담(burden sharing)을 생각해야 한다. 돈만 더 내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 미국의 대외 전략을 공유하고 공동의 위협에 함께 대응하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현실적인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때, ‘중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에 따라 비용 분담도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와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취지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넷째, 우리 군의 필수 역량을 강화할 계획을 다듬어야 한다. 사실 국방비 증액은 필요하다. 북한은 핵 능력을 키워 나가는 한편으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참전 이후 경제 상황 개선은 물론이고 현대전 경험까지 쌓는 중이다. 서해에서 중국이 보여주는 행보 또한 심상치 않다. 대북 억제력 확보에 필요한 첨단 무기체계 구비, 해군력 강화를 위한 차세대 구축함과 원자력 잠수함 획득 등을 검토해야 한다. 미국 무기체계 구매도 유효한 협상안이며,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우주기반 미사일 방어체계인 ‘골든돔’ 프로젝트 참여도 좋은 대안이다. 이에 더해 초급간부의 보수 인상도 필요하다. 적재적소에 지출되는 국방비 증액은 독이 아닌 약이다.
‘다기망양(多岐亡羊)’이란 말이 있다. 갈림길이 많아 양을 잃었다는 고사인데, 복잡할수록 근본에 충실하라는 뜻이다. 국방비 증액 등 여러 동맹 현안이 얽혀 있어 복잡한 상황이지만 우리 기준에서 필요한 국방력을 건설하고 동맹을 발전시키는 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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