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기 워싱턴 특파원

최근 만난 미국의 핵심 동맹국 대사관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는 노벨 평화상의 길을 좇는다”고 말했다. 산적한 현안 중 노벨 평화상을 받을 만한 성과를 그나마 만들어낼 수 있는 곳에 관심을 보이다 여의치 않으면 다른 현안에 눈을 돌리는 행태가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집권 1기 때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 국가 간의 국교 정상화를 이룬 ‘아브라함 협정’, 집권 2기 때의 인도-파키스탄 분쟁 중재 등과 관련해 노벨 평화상을 4∼5차례 받았어야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24시간 내 끝내겠다고 했고, 가자 전쟁 역시 이른 시일 내 마무리 짓겠다고 말했다. 그가 그린 종전은 미국의 통 큰 제안과 강한 압박에 두 나라가 모두 굴복, 자신을 가운데 두고 양측이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이었을 테다. 그러나 그 같은 상황은 취임 5개월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현실적인 이유로 종전을 택할 수는 있지만, 최고 지도자가 웃으며 러시아와 악수하는 장면은 불가능하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역시 그런 식의 마무리가 가능했다면 이때까지 문제가 꼬이지도 않았다. 두 개의 전쟁이 뜻대로 되지 않자 트럼프는 이란 핵으로 눈을 돌렸다. 그 와중에 잠시 북한의 김정은에게 친서를 전달하고,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을 중재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란 핵마저 뜻대로 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이란 핵 시설에 대한 대규모 폭격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고, 일단 이란과 이스라엘은 잠정 휴전에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를 위해 훌륭한 날. 미국에 위대한 날, 중동에 위대한 날”이라고 자찬했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4명. 퇴임 후 2002년에 상을 받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러일전쟁 종식의 시어도어 루스벨트(1906년), 국제연맹 창설의 우드로 윌슨(1919년) 그리고 2009년 취임 첫해 상을 받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3명이 현직일 때 수상했다. 미국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으려면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은 국제 분쟁을 평화롭게 해결하거나, 급속도로 격화된 분쟁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중재했을 경우일 테다.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이란 모두 그런 경우다.

그리고 북한이 있다. 1기 때 세 번이나 미북 정상회담을 했고, “내 친구 김정은”이 있는 북한. 지금 트럼프의 눈은 중동을 향해 있다. 이란에서 거둔 성과에 시선이 쏠려 있다. 하지만 향후 이란과의 핵 협상이 지지부진하면 언제든 한반도로 눈을 돌릴 수 있다.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트럼프는 무리하게 혹은 원칙 없이 북한과 관계 개선을 추진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북한과는 뭘 해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판단한다면 북한이 뭔 짓을 해도 한반도 정책은 뒤로 밀릴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한국에 쉽지 않고 바람직하지 않은 길이다. 한국의 입장이 배제된 미북 관계도 마뜩잖고, 반대로 아예 미국의 시야에서 북한이 사라지는 상황 역시 위험하다. 어느 경우든 북핵에 대한 통제도 쉽지 않다. 이재명 정부의 또 다른 숙제다.

민병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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