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전방위 경기 위축 대책 불가피

민생 지원은 정부의 간접 소비

신속성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

 

SOC 같은 정부 소비가 효율적

즉각 효과가 나지 않는 게 문제

현금 살포는 급한 불 끄기일 뿐

새 정부가 전 국민에게 ‘민생회복지원금’을 소비 쿠폰 형태로 지급한다. 총 13조2000억 원이 들어간다. 이 지원금은 총 30조 원 규모 추경의 간판 사업이다. 우리 경제는 지난 1분기에 0.2% 역성장했다. 미국발 관세 전쟁 이후 수출도 문제지만 내수도 어렵다. 건설과 설비 투자가 급감했다. 소매판매액도 전년 1분기에 비해 0.2%가 줄었다. 국가 재정 상황이 어렵지만, 내수 진작을 위해 대규모 추경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내수 부진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에게 쿠폰을 나눠 주고 소비를 ‘부탁’하는 간접적인 방법보다는 정부가 구매자로서 직접 소비를 일으키는 게 효과적이다. 도로·철도 건설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뿐만 아니라, 병원이나 체육시설 같은 생활형 건축, 그리고 데이터 구축 등 공공재를 생산하는 데 정부가 직접 지출하면 총소비 증가로 바로 이어진다. 그리고 재정 지출을 통해 마련된 사회기반시설(SOC)은 소비 쿠폰과 달리 대한민국의 자산으로 남는다. 현세대뿐만 아니라 후세대의 경제활동 등에 활용되는 자산이 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는 5차례나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소비 증대 효과는 기대 이하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평가 결과를 보면, 전 국민에게 지급된 1차 긴급재난지원금 중에서 26∼36%만 소비로 이어졌다. 재난지원금이 100% 소비로 이어지도록 현금이 아닌 소비기한이 정해져 있는 전자화폐와 지역상품권 형태로 지급했는데도 전액 소비되진 못했다. 지출해야 할 때 자기 돈 대신 상품권을 쓰고, 남은 자기 돈은 저축으로 남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체효과’가 이번에도 우려된다.

한 가지 다행한 일은, 민생회복지원금을 소득 수준별로 15만∼50만 원(인구소멸지역은 52만 원)으로 차등 지급해서 저소득층에 더 많이 가게 설계했다는 점이다. 대체효과는 이미 필요한 만큼 소비하며 사는 중산층에서 크게 나타난다. 하지만 당장 돈이 없어 쓰지 못하는 사람에게 지급된 소비 쿠폰은 대부분 추가 지출로 이어진다. 따라서 저소득 계층과 인구소멸지역에 더 많이 지급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또 한 가지, 소비 쿠폰의 발행과 지급은 비교적 신속하게 시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부가 공공사업을 일으키는 것은 직접적 소비 지출로 총수요 증대 효과가 크다. 그리고 미래 경제 효익을 창출할 수 있는 유형 자산을 후대에 남긴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소비 쿠폰 지급보다 시행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0.2% 성장을 기록한 지난해 2분기부터 추경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지난 정부는 이를 실기했고, 올해 1분기까지 4분기 연속 0%대 성장이라는 유례없는 침체를 겪는 데 일조했다. 새 정부가 당장 급한 불부터 끄자는 마음에서 가성비는 떨어지지만, 소비 쿠폰 지급을 결정한 것이라면 이해할 만하다.

이번 추경과 소비 쿠폰 지급으로 경제의 계속된 위축은 막겠지만, 경제가 되살아나길 기대하긴 어렵다. 우리 경제의 뒷걸음질이 도널드 트럼프발(發) 관세 폭탄이나 일시적인 경기순환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KDI는 기업의 투자와 생산성을 높이는 구조개혁이 성사되지 않으면, 잠재성장률이 2031년에 0%대에 진입하고 2047년에는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실제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잠재성장률 이하의 성적표를 받은 지 오래다.

이재명 정부는 ‘진짜 성장’을 내세우며 잠재성장률을 3%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구조개혁을 단행하더라도, 당장 수출에 기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당분간 확장적 재정정책이 동반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리는 방편으로 문재인 정부 때처럼 2차, 3차 계속해서 민생회복지원금이 지급돼선 곤란하다. 소비 쿠폰이든 현금이든 국민에게 돈을 뿌려서 경제가 발전한 역사는 없다. 그랬다면 남미의 여러 나라는 벌써 선진국이 돼 있을 것이다. 구조개혁과 함께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할 때는 소비 쿠폰보다는 미래의 경제 효익 창출을 위해 유무형의 SOC 구축에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게 필요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대신 내수를 일으키겠다고 소비 쿠폰이나 돌렸다면, 지금의 대한민국 경제가 있겠는가.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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