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돼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까지 1129일 동안 치러진 6·25전쟁은 적어도 다음 네 가지의 일깨움을 후세대인 우리에게 요구한다.

첫째는, 이 땅에서 6·25 참상이 되풀이돼선 절대로 안 된다는 뼈에 사무치는 일깨움이다. 64만 명의 군경 부상자와 사망자, 북한군에 의한 학살·실종 등 100여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기록하고 무수한 생이별과 사별을 양산했던 그 전쟁을 다시 겪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동맹과 우방의 소중함에 대한 일깨움이다. 4만여 명의 전사자와 10여만 명의 부상자를 기록한 유엔군의 참전이 없었다면 오늘의 번영된 자유 대한민국은 없을 것이며, 유엔군의 대다수가 미군이었다는 사실은 동맹의 소중함을 수십 번 일깨우고도 남는다.

셋째는, 숱한 피 흘림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6·25가 우리나라를 근대국가로 재탄생할 수 있도록 한 전기(轉機)이자 징검다리였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6·25를 겪으면서 우리는 봉건 체제를 청산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정체성으로 하는 국가로 발전해 오늘날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을 추월해 4만 달러를 내다보는 나라가 됐다. 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창의력과 효율성을 포기하고 수령독재 세습체제를 고수한 북한은 극빈의 나락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네 번째 일깨움이다. 6·25는 끝나지도 않았고 잊혀서도 안 되는 전쟁이라는 사실과 지금이 또 한 번의 ‘6·25 전야’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75년 전 남한은 좌우 분열로 시끄러웠고, 미국이 애치슨라인을 발표하는 중에 중국과 소련은 한반도 적화 전쟁을 꿈꾸는 북한의 남침을 사주했다. 지금의 안보 정세가 그때와 닮았지 않은가.

전·현직 교황들이 ‘조각난 제3차 대전’이라고 개탄할 만큼 지구촌 곳곳에서 총성이 들리는 가운데 동유럽과 중동에서는 핵전쟁 발발을 위협하는 불길이 치솟고, 대만해협과 한반도는 전문가들이 지목하는 차기 전장(戰場) 후보지가 되고 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한국과 긴밀한 관계에까지 갔던 중·러는 북핵 고도화를 방조·지원하면서 유엔안보리의 모든 대북 제재 결의를 무력화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북한과의 동맹조약까지 복원했다. 게다가 신고립주의 조류를 타고 출범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외치고, 우리는 그때처럼 분열돼 있다.

6·25전쟁 75주년을 맞은 한국 국민은 다시 한번 그때의 아찔했던 순간들을 소환해 봐야 한다. 침략 후 한 달 만에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온 공산군, 백선엽 장군의 다부동전투,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 등 아찔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국가가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을 확인해야 한다. 한미동맹을 성사시키기 위해 정전협정을 목전에 둔 1953년 6월 18일, 반공포로 3만5000명을 석방한 이승만 대통령의 결기가 나라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전쟁의 참상을 겪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어떤 안보·국방 기조 그리고 어떤 동맹 외교가 전쟁의 재발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찬찬히 따져봐야 한다. 그것이 6·25전쟁 발발 75주년을 보람되게 보내는 좋은 방법이다.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김태우 한국군사문제연구원 핵안보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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