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환 디지털콘텐츠부장
수많은 영웅이 등장하는 ‘삼국지연의’의 화려한 서사는 ‘십상시(十常侍)’라는 이른바 ‘측근 정치’의 문제점에서 시작된다. 후한 영제 시절, 황제 곁에서 권력을 휘둘렀던 열 명의 환관. 이들은 단순한 시종을 넘어 정치와 인사를 좌우하고 국정을 농단하며 황제조차 좌지우지할 만큼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나라의 잘못을 고치려는 영웅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가 본격화했다. 그러나 측근 정치 타도를 외치며 일어섰던 동탁과 조조조차도 결국은 그 자신들이 황제 앞을 가로막고 권력을 행사하는 ‘그림자 권력’이 됐다.
우리 역사 속에도 이런 전례는 많다. 조선 태종 이방원의 즉위에 큰 공로를 세운 부인 원경왕후 민씨와 그 일가, 특히 민무구·민무질 형제가 대표적이다. 이방원 정권 창출에 공이 있었던 그들은 정권 초반 절대 권력을 누리려 했다. 민씨 형제는 세자의 장래를 빙자해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려 했지만, 태종은 그들을 제거해 외척의 정치 개입을 원천 봉쇄했다. 두 나라의 사례에서 보듯 측근 정치를 극복하지 못한 한나라는 결국 몰락했고, 측근 정치를 과감히 배격한 태종의 조선은 500년의 장구한 역사를 쓰게 된다.
권력의 그림자는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나라의 운명을 바꾼 흥망성쇠에는 언제나 이른바 ‘문고리 권력’이 있었다. 측근의 이름으로 권력이 사유화되고, 국가가 혼란에 빠지는 일은 역사가 반복해서 경고해온 실패의 공식이다. 새 정부가 막 발을 뗀 이 시점에 이재명 대통령과 여당은 이를 깊이 새겨야 한다.
자진 사퇴한 새 정부 민정수석 오광수 변호사는 이재명 정부 첫 고위직 낙마 인사다. 임명된 지 닷새 만에 신상 논란이 터졌다. 인사 검증 실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여권 내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정치권에서는 인수위원회 과정이 없던 이재명 정부가 충분한 인사 검증 시간을 갖지 못하면서 인사 검증 실무를 이 대통령의 측근 참모 그룹인 이른바 ‘성남·경기 라인’ 인사들이 주도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부터 함께해온 모 비서관의 경우 정치권에서 이 비서관을 통하면 ‘만사형통’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라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문제는 정권이 출범한 지 한 달도 안 되는 시점에 이런 대통령의 측근 이야기가 나돈다는 점이다.
대통령 주변 인사의 구조적 폐쇄성 때문에 ‘인(人)의 장막’에 싸이기 쉽고, 대통령이 국정을 몇 명의 ‘그림자 참모’에게만 의존하게 되면 권력은 국민의 손에서 멀어지고, 소수의 권력자에게 농축된다. 행정 효율성은 떨어지고, 책임 정치도 실종된다.
그러나 ‘오래된 동지’가 최고의 ‘국정 파트너’는 아니다. 물론, 권력욕이 강한 이 대통령이 측근들의 권력 남용을 방관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많은 행정 경험이 이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이 대통령이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이 대통령보다 ‘더 준비됐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결국 자식들의 권력 남용 때문에 몰락했다. 대통령의 길은 ‘홀로 가는 고독한 길’이다. 그 길에서 그림자가 앞서 걷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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