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지난 2023년 10월 윤석열 정부가 도입한 노조회계공시 제도가 채 2년도 안 돼 폐기될 모양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지난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노조회계공시 제도의 철폐를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양대 노총은 노동 탄압 목적으로 법률이 아닌 노조법·소득세법 시행령과 행정지침을 개정해 도입한 제도인 만큼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회계공시 제도란 노조 또는 산하 조직에 수입과 지출, 자산과 부채를 공시하도록 해 자율적으로 조합원과 국민에게 이를 알리는 것을 말한다. 조합원이 1000명 이상인 단위노조나 연합단체, 총연합단체의 경우에는 회계를 공시해야만 조합원이 기부금 명목의 조합비에 대한 15%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한노총이나 민노총이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그 산하 조직 조합원들은 세액공제를 못 받는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따라서 한노총과 민노총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지난 2년간 이를 공시해 온 것이다. 공시 여부는 자율인 만큼 100% 공시는 안 되고 있다. 지난 5월 2일 고용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한노총 소속 노조의 회계공시율은 97.1%인 반면 민노총은 83.3%이라고 한다.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와 그 소속 산하 조직이 아직 공시하지 않은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이처럼 자율 규제임에도 지난 2년여간 평균 89.1%의 노조가 공시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이 제도는 나름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공시참여율이 높은 것은 조합원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원하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그런데도 양대 노총이 공시제도가 노조의 자율성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이를 철폐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다소 의외다. 오히려 이를 철폐하는 것이 노조의 자율성을 침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회계공시는 영리·비영리 단체 구분할 것 없이 이해관계자와 감독기관, 그리고 국민 모두를 위해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불가피한 제도이다. 조합원은 그가 낸 조합비가 어떻게 쓰이는지는 당연히 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세부적인 내용, 즉 회계장부를 공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굳이 필요하진 않다. 그러나 재무제표 정도의 회계공시는 꼭 필요하다. 더욱이 각국은 자율 규제 차원에서 공시제도를 더욱 확산시키는 추세이다. 유럽 지속가능보고서 공시제도가 대표적이다. 유럽연합(EU) 소재 기업이 임직원 500명 이상인 EU상장사이거나 비EU 소속 지배기업의 연결매출액이 1억5000만 유로 이상인 경우, 그리고 EU 소재 지점의 연 매출이 4000만 유로 이상이면 의무적으로 기업 지속가능보고서를 공시해야 한다. 주요 내용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이다.
이는 유럽에 수출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그 협력업체도 지속가능보고서를 공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수출하지 않거나 수출기업의 협력업체가 되지 않으면 공시해야 할 의무는 없다. 이런 현상은 기업에 대한 법적인 규제들이 점차 자율 규제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잘 정착돼 가는 회계공시 제도를 조합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를 폐지하라는 양대 노총의 요구는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된다.
양대 노총은 물론이고 여당과 이재명 정부도 이런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무리한 선택을 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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