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 인터뷰 -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

 

정부 재단설립 계획 동의하지만

피해자 직접적 배상이 더욱 중요

 

韓, 일본문화 친근… 관계 개선중

30년前 역사인식도 벗어날 필요

 

日정부도 명확한 입장표명 해야

위안부문제, 총리가 직접 나서길

 

‘제국의…’ 논란후에도 연구 지속

위안부 피해자가 먼저 연락도 해

미국 시카고에 머물고 있는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 박 교수는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한·일 관계에 대해 “진심 어린 대화, 그리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시작”이라고 말했다. 박유하 교수 제공
미국 시카고에 머물고 있는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 박 교수는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한·일 관계에 대해 “진심 어린 대화, 그리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시작”이라고 말했다. 박유하 교수 제공
박유하 교수가 2013년 발간한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교수가 2013년 발간한 ‘제국의 위안부’.

올해는 한·일 수교 60주년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지난달 18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린 캐나다에서 만나 양국 간 협력 확대를 약속했다. 최근 들어 두 나라 국민들 간 호감도도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사, 특히 위안부 문제는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다. 위안부 문제를 다루다 10여 년간 법정 다툼까지 이어간 교수가 있다.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국제학부 명예교수다. 박 교수는 “한·일 관계의 본질적 개선을 위해서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책을 집필했다. 하지만 2014년 6월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던 위안부 피해자 9명의 이름으로 위안부를 매춘부, 일본군 협력자 등으로 매도했다며 법원에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명예훼손으로 그를 고소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10년이 지난 2024년 4월과 올해 3월 법원은 민·형사재판에서 각각 박 교수의 손을 들어줬다. 미국 시카고에서 머물고 있는 박 교수를 지난달 28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박 교수에게 먼저 이재명 정부의 과거사 해결 방향부터 물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과 함께 ‘여성인권·평화재단’ 설립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큰 틀에서는 동의하지만, 무엇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며 “분명 일본이 잘못했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운동가들의 30년 전 인식이 정착되고 말았는데 그 인식을 넘어설 수 없다면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재단보다 중요한 것은 위안부 피해자 개개인에게 직접적인 보상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 국민 간 교류도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다만 역사 문제 등 양국 사이 뇌관은 제거되지 않았다. 박 교수는 “양국의 호감도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지만 양국 국민의 역사인식이 바뀌고, 역사갈등을 풀지 않고서는 관계개선을 담보할 수 없다”며 “우리가 일본 대중문화에는 친숙해졌어도, 역사적으로는 여전히 20∼30년 전 교과서에서 배운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국 관계 회복을 위해 일제 식민지 역사와 일본이라는 사회를 정확히 알고자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한·일 관계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서는 일본 정부의 보다 명확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5년 위안부 문제 합의 당시 일본 외무상이 합의 내용을 대독했지만, 앞으로는 총리가 직접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다른 문제에 대한 반성도 담아 일본 국회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를 담은 국회 결의를 할 필요가 있다”며 “시간이 걸리겠지만 한·일 관계 개선의 종착역은 재일교포 참정권 실시”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위안부 문제가 해결된다고 곧바로 한·일 관계가 비약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는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문제라든지, 최근엔 동학 유족 보상 논의 등 과거사 이슈가 계속해서 소환되고 있다”며 “한·일 간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개별 사안을 넘어선 깊이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의 학문적 지평은 한·일 간의 역사 문제와 민족주의 등 핵심 쟁점을 다룬다. 특히 2005년 ‘화해를 위해서’라는 책을 통해 독도와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위안부 등 양국 갈등의 핵심을 다뤘다. 그는 “양국의 민족주의를 함께 비판하면서 상호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식을 담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이 책으로 2007년 박 교수는 매년 아사히(朝日)신문이 정치·경제·국제관계 분야의 수준 높은 저자에게 주는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 논단상’을 외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박 교수는 2013년 진정한 한·일 관계 개선이 이뤄지기 위해선 대중 간 이해와 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룬 ‘제국의 위안부’를 발간했다. 위안부 문제를 전쟁범죄가 아닌 식민지 지배의 구조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시각을 담았다. 좌도 우도 아닌, ‘제3의 목소리’를 지향했다. 그는 “우리는 일본과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식민 지배를 받았던 것”이라며 “조선인 위안부의 경우 식민지배 희생자의 틀로 묻는 것이 설득력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책은 곧바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박 교수는 경악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전반에 깔린 반일감정을 넘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라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출판했는데, 초반에는 긍정적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일본에서 진보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니치(每日)신문에서 ‘제27회 아시아 태평양상’ 특별상도 받았는데 직후에 기소를 당했고, 이후 상황이 급격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책을 둘러싼 법정 다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삭제당한 책을 원본 복구, 출판 가능하게 해 줄 가처분 소송이 아직 심리기일도 잡히지 않은 상태기 때문이다. 일부 할머니들과의 관계는 멀어졌다. 고발 직후 일부 피해자들은 박 교수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연락도 끊었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해 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박 교수는 “재판과는 별개로 오해를 풀고 싶었다”며 “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마음이 상하신 듯했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며 박 교수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는 “처음엔 저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이가 많지 않았다”며 “하지만 사건이 알려지면서 냉정하게 역사와 정치를 바라보려는 흐름이 조금씩 생겨났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교수처럼 위안부 문제에 학술적으로 접근하는 학자들도 점차 등장했다. 하지만 대중을 상대로 직접 목소리를 내는 연구자는 여전히 드물다. 박 교수는 “냉전 종식 후 일부 진보들이 정착시킨 ‘상식’에 반하는 목소리는 그 내용과 무관하게 공격 대상이 되곤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 교수를 ‘학문의 자유’를 상징하는 인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표현의 자유나 학문의 자유를 주장하려고 쓴 책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박 교수는 “내용을 제대로 읽으면 문제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낸 것”이라며 “다만 한국 사회에서 학문이 아직 충분히 자유롭지 않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수준은 세련돼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진영주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여전히 삭제된 책의 원본을 복구해 출판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의 진심이 통한 것일까. 최근에는 위안부 피해자 한 명으로부터 직접 연락이 오기도 했다. 박 교수는 “한·일 합의 결과로 일본 국가가 한국 정부에 전달한 일본의 국고금을 주한 일본대사관에 요청해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셨어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문제라는 뜻이죠”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지금도 같은 질문을 붙들고 있다. 위안부 문제, 그리고 한·일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국가와 인류의 폭력사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그는 말한다. “진심 어린 대화, 그리고 자신과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시작입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건 변하지 않을 거예요.”

김린아 기자
김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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