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권 산업부 차장

세계적인 다국적 화학 소재 기업 듀폰은 2013년 한 해 동안 주가가 40% 이상 급등했다. 행동주의 펀드 트라이언이 듀폰 지분을 매입해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하면서 소액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7년에도 연간 20% 넘게 주가가 오르면서 당시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상승률을 상회했다. 문제는 그 뒤였다. 2018년 -23.2%, 2019년 -13.6% 등 큰 폭으로 하락했다. 단기 배당 확대 이후, 연구·개발(R&D) 등 미래 성장 투자 여력 감소와 사업 포트폴리오 약화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듀폰은 상당한 자원과 비용을 소모하면서 경영권을 지켜낸 뒤 내부 조직 효율화 등을 통해 시장의 신뢰 회복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이후 주가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다가 올해도 연초 대비 약 5% 이상 하락한 상황이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미국 상장사 중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가 관철된 기업 549곳을 분석한 결과, 1∼3년 단기적으로 기업 가치는 1.4%포인트 상승하지만, 4년을 넘어가면 이전보다 더 하락했다. 원인은 배당 확대·자사주 매입 등으로 미래 투자 재원이 고갈되고, R&D·설비투자·고용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코스피가 상법 개정안에 대한 기대감으로 연일 상승하고 있지만, 신기루처럼 보이는 이유다. 최근 상승은 실적 개선이나 기업 펀더멘털이 좋아져서가 아닌 탓이다. 실적 없이 기대감만으로는 상승을 유지할 수 없다. 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 등 가치가 상승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상법 개정안이 기업 가치 상승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조항은 기업 경영진에게 소송 가능성을 열어둬 과감한 미래 투자 등을 주저하게 만든다. 행동주의 펀드의 이사회 진출을 열어주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조항은 기업의 알짜 자산을 매각하게 하거나, 경영권 방어에 투자자금을 소진하게 할 수 있다. 무리한 배당 요구나 경영권 분쟁이 늘어나면, 기업은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매출액 상위 600대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기업의 절반 정도가 상법 개정이 투자 및 인수·합병(M&A)을 축소시킬 것이라고 답했다.

더 우려되는 점은, 기업 실적 둔화를 넘어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해외 투기자본에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엔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등 적대적 M&A에 대한 경영권 보호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제도적 보호장치는 물론 경영 판단 원칙을 도입해 합리적 의사결정에 대한 경영자의 책임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제도 시행에 유예기간을 둬 기업이 변화에 적응하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개선할 시간도 있어야 한다. 이사의 충실의무만 강화하기보다는 주주권 남용을 막기 위한 주주의 충실의무도 담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장기적으로 상법 개정에 따른 부작용 피해는 소액주주를 비롯한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성장 동력을 잃은 기업은 자본만 잠식하다 사라질 수 있고, 해외 투기자본에 넘어간 기업은 알짜 자산만 팔아치운 뒤 버려질 수 있다. 소액주주 보호만이 아닌 기업의 경쟁력이 훼손되지 않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이용권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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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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