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 前 駐유엔 대사
고정관념…통일부…9.19 복원
李정부 당국자들 설익은 언사
문재인 정부 답습 땐 외교 재앙
가치 없는 실용은 방향의 실종
일방적 자제는 적 오판 부추겨
북한 정권과 군대는 명백한 敵
이재명 대통령 취임 한 달, 대선 기간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외교안보 의제들이 회자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때 쓰던 동맹파, 자주파의 용어가 다시 등장했다. 분류법이 썩 옳지는 않겠지만, 인사가 정책 추진에 미치는 중요성에 비춰 그 등장 배경은 수긍이 간다. 이 대통령 취임 직후 미 국무부 대변인이 중국은 동맹 관계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성 발표를 하자, 중국 외교부가 즉각 반박한 것은 미구에 닥칠 외교 격랑의 진원을 예고한다.
이 와중에, 미국 먼저 방문의 고정관념을 깨자는 외교장관 지명자의 언급은 여러모로 신중치 못하다.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중요시하면서도 중국과의 실용외교를 언급하고 대북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하자, 정부는 대북 전단 살포 단속,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9·19 남북 군사합의 복원, 민간단체 대북 접촉 허용 등을 발표했으나, 북측은 오히려 군사분계선 일대 차단벽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유엔사(司)에 통보한 것을 두고 북측의 의미 있는 반응이라고 본다면 언어도단이다. 또한, 통일부 명칭 변경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을 보며 환상 속에 실패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인식과 유사해지지 않는가 하는 걱정이 든다. 이참에 안보의 기본 인식과 관련해 두 가지를 거론해 본다.
우선, 가치와 실용 간의 선택이다. 냉전시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이념 대립은, 탈냉전 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로 성격이 바뀌었다. 민주 세력의 원칙은 규칙 기반 질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와 인권 등 기본 가치를 견지하는 것이며 도덕적 가치를 넘어서 정치·사회·시민적 가치와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가치외교와 실용외교는 공히 국익을 추구한다. 가치 없는 실용은 방향의 실종이며, 실용 없는 가치도 공허하다. 둘은 배타적이 아니고, 가치는 실용을 추구하는 상위의 개념이자 변치 않는 국가 전략의 기본 틀이다. 가치외교가 한중 관계를 악화시켰기에 실용외교를 하겠다고 한다면 비 맞은 탓을 기상청에 돌리는 궤변이며 한중 관계 발전의 단추를 잘못 끼우는 실수다.
다음으로, 전쟁과 평화에 관한 인식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를 대신한 인사말에서 아무리 비싼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다고 했다. 또한, 가장 확실한 안보는 싸울 필요 없는 평화를 만드는 것이라고도 했다. 전쟁과 평화는 추상적 개념의 회색 영역이 있어 이분법적 논리로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사람은 평화 속에 살기 위해서 전쟁을 한다고 했다. 도발에 대해 원칙과 단호함을 강조하면 흔히, 그러면 전쟁하자는 거냐 하는 반응이 되돌아오곤 했지만, 이런 감정적 반응은 옳지 않다.
폭력 상태의 결여만이 평화가 아니고, 적대행위의 물리적 충돌만이 전쟁이 아니다. 전쟁은 쌍방의 주관적 의사인 전의(戰意)의 법적 상태이기도 하다. 김정은은 2023년 이래 ‘한국은 의심할 바 없는 명백한 적’이라며 핵무기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명령했고, 남북을 ‘전쟁 중의 두 교전국’이라고 했다. 이것이 전의의 표명이다. 그런데 국방장관 내정자는 9·19 군사합의 복원을 통해 평화의 기류가 흐르게 해야 하며, 북한은 적(敵)이기도 하지만 동족이기도 하다고 했다. 틀린 말이다. 북한 정권과 군대는 적이고 북한 주민이 동족이라고 해야 맞다.
선의의 일방적 자제가 적의 야욕에 찬 오판으로 이어져 전쟁의 빌미를 준 사례가 1930년대 영국의 유화 정책이었다. 역사는 네빌 체임벌린의 평화관과 윈스턴 처칠의 전쟁관의 대조적 결과를 뚜렷이 기억한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평화 추구가 유일한 정책 목표가 될 경우, 전쟁의 두려움은 무자비한 상대방의 손에서 강한 무기가 돼 우리 측을 도덕적으로 무장해제시킨다고 했다. 평화는 적 세력이 호응해야 겨우 성립되는 복잡한 쌍방 사업이다.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친절로 인한 실수가 최악으로 간주되는, 너무나도 위험한 사업이라고 전쟁론에서 강조했다. 따라서 대통령 말씀은, 가장 확실한 평화는 강한 안보에 있다고 해야 맞다. 양차 대전을 치른 서양과 6·25전쟁 때의 우리 조상보다 지금 우리가 과연 얼마나 더 현명하길래 싸우지 않고 평화를 쟁취할 수 있겠다고 하는가.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영영 유아 상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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