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김혜순 지음│문학과지성사

“시 한 편 한 편은 장례다. 불가능한 애도다. 나는 장례를 계속해서 시도한다. 나는 엄마의 죽음은 글쓰기로밖에는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죽음, 죽음의 엄마는 글쓰기 안에 좌정한다.” (산문 ‘죽음의 엄마’ 중)

죽음은 그 자체로 시인 김혜순의 시적 세계를 오랜 시간 관통해온 주제다. 스스로도 “나의 시 쓰기의 기반은 죽음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그런 그에게도 ‘어머니의 죽음’은 자신을 더 깊은 죽음의 세계에 천착하게 만드는 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출간된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문학과지성사)를 보면, 다양한 체취의 죽음을 기록해온 김혜순(사진)의 시 세계에 어머니의 죽음은 짙은 흔적을 남겼다.

책에는 ‘죽음의 자서전’(2016)과 ‘날개 환상통’(2019),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2022)까지 죽음을 주제로 한 김혜순의 시집들이 3부작 형태로 담겼다. 김혜순의 미발표 산문 ‘죽음의 엄마’도 함께 실렸다. 지난 2019년 숨진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다. 공감과 연민이 복잡하게 뒤얽힌 관계. 끊어내려 할수록 더 옭아매는 관계. 한편으로는 상실을 통해 비로소 완전에 가까워지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김혜순은 죽음을 통해 읽어냈다.

김혜순은 “죽은 어머니를 시 속에 안치하고” “흰 종이를 죽어버린 엄마가 넣은 관”처럼 사용한다. 어머니는 죽었지만 시를 여전히 떠나지 않고 죽음 이후의 삶을 그려나간다. 그런 죽음은 오히려 무한한 생명력을 닮아있다. 김혜순은 어머니의 죽음을 바리공주 같은 여성신화와 병렬한 채 “삶의 한가운데 죽음이 있고, 죽음의 한가운데 삶이 들어있는” 형태라고도 말한다.

또 하나 기억할 것은, 딸에게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나’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누군가에게 딸이고, 딸은 누군가에게 어머니가 되는 무한의 굴레다.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김혜순은 자신의 “여성형 상처”도 들여다보게 된다. 그 상처를 바라본 김혜순은 “죽음의 분만으로 나는 시인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죽음은 수많은 어머니의 형상들을 향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단수의 엄마에서 복수의 엄마를 추출한다” “(시라는 배가) 한번 출항할 때마다 엄마는 이 세상에 분배된다”는 구절이 그렇다. 그의 여러 작품 속 죽음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며, 돌고 돌아 결국 ‘우리’의 죽음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필연적으로 당도하게 될 수많은 죽음 앞에서 비통해하는 우리에게 건네는 애도 같기도 하다.

김혜순은 오래전부터 죽음을 증언하고, 고통과 상처의 기록을 독자들과 나눠왔다. 3부작 중 첫 번째 시집인 ‘죽음의 자서전’도 그렇다. 2016년 세월호 침몰 등 사회적 비극으로 숨진 사람들을 떠올리며 쓴 작품이 담겼다. 2024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두 번째 시집 ‘날개 환상통’에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파생된 기록이 담겼다. 세 번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에서 어머니의 죽음은 코로나19와의 전쟁 등을 거쳐 전 지구적 개념으로 확장됐다. 김혜순은 지난달 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한 대담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저의 ‘죽음 3부작’으로 불리는 시집 세 권이 있는데 그게 한 편의 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616쪽, 3만6000원.

인지현 기자
인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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