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 서울, 극장도시의 탄생

박해남 지음│휴머니스트

 

우리나라 첫 세계적 문화 행사

1960년대부터 1980년대 걸쳐

정부 기획 아래 ‘모범사회’준비

 

‘미풍양속의 문화 국민’ 캠페인

판자촌 정비하고 취약층 몰아내

올림픽 석달 전 ‘범죄 소탕작전’

2주간 1만5000명 구속하기도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화 점화 장면. 점화자로는 체육교사였던 정선만 씨와 서울예고 무용과 학생 손미정 씨, 마라톤 국가대표 김원탁 선수가 나섰다. 아래 사진은 1970년대 사회정화위원회의 ‘근검절약’ 포스터. 휴머니스트 제공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화 점화 장면. 점화자로는 체육교사였던 정선만 씨와 서울예고 무용과 학생 손미정 씨, 마라톤 국가대표 김원탁 선수가 나섰다. 아래 사진은 1970년대 사회정화위원회의 ‘근검절약’ 포스터. 휴머니스트 제공

굴렁쇠 소년을 기억하는가. 1988년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정적으로 가득 찬 무대를 이 소년이 가로지르며 우리나라의 첫 ‘메가 이벤트’는 포문을 열었다.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2주간 진행됐던 서울올림픽은 인상적인 개막식만이 아닌 그 자체가 하나의 공연이었다. 세계의 주목을 받는 행사를 위해 우리나라는 1980년대 전부를 할애해 무대에 오를 배우들을 만들어냈고 그 무대를 다듬기 위해서 1960년대부터 기틀을 잡았다. 그간 형제복지원과 장위동 등 다양한 공간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들여다본 사회학자 박해남이 이 책을 통해 올림픽을 품었던 도시 서울을 ‘극장 도시’라고 해석하는 이유다.

공연이란 무엇인가. 무대 위에서 정해진 연출과 기획 아래 배우들이 각자의 배역으로 만들어가는 하나의 문화행사다. 여기서 나아가 밀튼 싱어가 제시한 ‘문화적 공연’이라는 개념에 따르면 “한 문화 또는 사회가 스스로를 거울에 비추고 스스로를 정의한 후, 집합적 역사와 신화를 극화해 있는 그대로 보여주거나 대안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올림픽이 한 나라의 이미지 개선을 위해 ‘공연적’으로 사용된 사례는 제법 많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독일의 나치 정권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해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무대로 활용됐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이탈리아, 일본, 독일은 국제사회로의 복귀 무대로 로마 올림픽(1960), 도쿄 올림픽(1964), 그리고 뮌헨올림픽(1972)을 활용했다.

한국에 올림픽은 국제사회에서 지위를 바꿀 기회였다.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해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는 1960∼1980년대의 우리나라는 올림픽을 통해 세계에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준비를 마쳤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도 정비된 도시와 ‘문화 국민’들로 가득 찬 나라라는 사실을 전해야만 했다.

공연의 무대가 될 서울은 곳곳이 정비됐다. 해방 이후 ‘주인 없는 땅’이었던 종로3가는 부랑자들의 터전이자 성매매 집결지였는데 서울시는 올림픽을 앞두고 이곳을 통째로 공원으로 바꿨다. 지금의 탑골공원과 종묘광장공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1979년 정상천 서울시장은 마침내 올림픽 유치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1981년 서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됐다.

공연의 주연이 될 만한 배우들도 양성해야 했다. 1968년 대한체육회와 올림픽위원회, 학교체육회를 통합해 지금의 엘리트 선수 양성 체계를 완성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스포츠 선수를 필수 고용하도록 했고 스포츠 이벤트를 매년 최소 1회 이상 개최할 것을 강제했다. 메달리스트를 위한 체육연금제도와 병역 혜택 모두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0년에 걸쳐 도입됐다.

이제 막 피어오르던 극장도시의 시대는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유치계획 발표로부터 불과 18일 뒤, 박정희가 1979년 10월 26일 사망하면서다. 사라진 연출자의 계획을 이어받은 것은 신군부였다. 약간의 변주는 있었지만 대본의 플롯은 큰 틀에서 같았다. 군인들은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사회 정비에 나섰고 ‘새마을운동’은 ‘사회정화운동’으로 이름만 달리한 채 이어졌다.

무대는 마련됐다. 주연배우의 선발까지 마쳤다. 이제 필요한 것은 ‘문화 국민’이었다. 1981년 내무부는 ‘올림픽 새마을 7개년 종합계획’을 입안했고 “친절, 근검, 정직의 예의 민족, 전통·미풍양속의 문화 국민”을 표어로 한 올림픽 새마을운동을 펼쳤다. 올림픽 개최국의 시민으로서 국민들은 단정한 용모를 유지하고 교통신호와 약속시간을 지켜야 했으며 웃으면서 대화를 해야 했다. 법무부에서는 ‘올림픽 저해사범’이라는 개념을 만들었고 경찰 소속 치안본부는 1988년 6월 ‘올림픽 대비 경찰 범죄 소탕 70일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2주 만에 전국에서 1만5000여 명을 구속시켰다. 8월부터는 서울에서 423개 행정동 중 37개 동을 제외한 시 전역을 ‘올림픽 평화구역’으로 지정해 집회·시위 행위를 금지했다.

서울올림픽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고 극장도시의 시대는 지나갔다. 메가 이벤트에 국가의 지위가 달려있다는 믿음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재벌이 나서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신화는 부산엑스포의 유치 실패로 무너졌고 그렇다고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중도 폐막이 국가적 위기를 불러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도시에는 여전히 세계라는 관객에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무의식이 흐르고 있다. ‘오징어게임’이 몇 개국에서 1위를 했는지, K-팝 아이돌 그룹이 해외 빌보드 차트 몇 위를 했는지를 의식하는 우리는 여전히 극장도시 그 한가운데에 있는 것은 아닐까. 384쪽, 2만4000원.

신재우 기자
신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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