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작가를 출판합니다
지크프리트 운젤트 지음│한미희 옮김│유유
獨 유명 출판사 주르캄프 대표
릴케 등 시대 이끈 작가 4명과
문학 작품 완성까지 비화 다뤄
“문학은 대중을 따라가기보다
새 가치를 독자에 강요하는 것”
출판인의 덕목과 과제 제시도


모든 책은 출판사를 통해야만 세상 빛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수많은 작품을 썼다 해도, 독자들이 아무리 읽고 싶어도, 출판사 없이는 책도 없다. 독일을 대표하는 출판사 주르캄프 대표를 역임하며 “주르캄프 출판사를 반석 위에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지크프리트 운젤트의 ‘우리는 작가를 출판합니다’는 그가 주르캄프에서 만난 헤르만 헤세, 베르톨트 브레히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로베르트 발저와 한 편의 문학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고투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네 사람과의 간난고투를 시작하기에 앞서 그는 ‘문학 출판인의 과제’를 짚는다.
운젤트에 따르면 출판인은 “책이라는 신성한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사람”이다. 책, 특히 문학이 신성한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대중의 가치를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가 원하지 않는 새로운 가치를 독자에게 강요하는” 문학이어야 한다. 대중은 불편한 진실보다 기존 질서에 안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문학출판인은 “성공이 보장되는 몇 권의 책보다는 전체적인 모습의 작품과 작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한 권 한 권의 책은 그 출판사의 “연륜을 보여주는 나이테”이고, 그것들이 모여 “출판사의 프로필 혹은 얼굴이라고 부르는 것”이 유기적으로 생겨난다. 책과 문학의 쓸모를 운젤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책, 그러니까 우리의 수준 높은 책 유형은, 여가의 확대와 개인의 성숙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진 우리 사회에서 꾸준히 자기 자리를 주장할 거라고 확신한다.”
운젤트에게 헤르만 헤세는 좋은 작가이면서 “자기 글의 경제적 이용과 관련해 자기 이익을 유능하게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헤세는 책 출간에 앞서 “활판 인쇄와 종이의 정확한 견본”을 요청했고 무료 증정 부수, 인세 등 계약 조건을 꼼꼼하게 챙겼다. 헤세가 이재에만 밝은 사람은 아니다. 헤세는 운젤트가 주르캄프를 맡게 되자 편지를 보내 이렇게 격려했다. “선생님이 맡은 일은 아름답고 고결한 일입니다. … 출판인은 ‘시대와 함께’ 가야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시류를 따라가면 안 되고, 시류가 품위가 없는 경우 시류에 저항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적응과 비판적 저항에서 훌륭한 출판인의 역할이, 들숨과 날숨이 수행됩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운젤트는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작품 읽기를 즐겼다. 다만 함께 일하기는 어려웠다. 브레히트와 주르캄프가 연을 맺는 것은 1945년 10월인데, 그가 스위스, 체코, 덴마크, 미국 등지를 떠돌다가 돌아와 정착한 곳이 동독이었다. 쉽게 만날 수 없었고, 대개의 작업은 편지로 이루어졌다. 게다가 “모든 것은 고칠 필요가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던 브레히트는 “책이 출간된 뒤에도 계속 작품을 수정”하는 독특한 작업 방식을 고수했다. 브레히트의 “모든 텍스트에는 수많은 판본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뢰는 단단했고, 1956년 브레히트 사망 후에도 전집 출간은 계속되었다. 운젤트의 전임자로 주르캄프를 창업한 페터 주르캄프의 추도사 중 한 대목이다. “우리 출판사는 브레히트 작품의 보존과 관리에 힘을 쏟을 것입니다. … 이제야 비로소 이 시인의 위대함을 깨달은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에 이어 다루는 로베르트 발저는, 책 분량만으로 보면 운젤트가 특별히 애정을 기울인 작가임에 틀림없다. 발저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서 파멸한 허약한 본성의 소유자”, 즉 “고독한 사람”이었다. 고독 때문에 말라갔지만, 고독은 발저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운젤트의 말이다. “20세기의 위대한 독일어 작가 가운데 이 위대한 무명작가처럼 당대의 주요 출판인 및 출판사와 그토록 변화무쌍한 접촉을 가진 작가는 없었다.” 책 마지막 장의 제목은 ‘직업으로서의 출판인’인데, 신변잡기를 늘어놓은 듯하지만, 책과 출판의 중요성을 아는 독자라면 밑줄 그을 만한 대목이 제법 많다. 그중 하나다. “우리는 ‘책을 만드는’ 열정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 책을 만든다는 것은 책이 정신적인 재산으로 다시 독자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시장에서 ‘상품’이 되는 단계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기도 하다.” 616쪽, 3만3000원.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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