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석 사회부 차장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으로 파면된 지 11일 만인 2017년 3월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출석해 포토라인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마디는 국민에 대한 사과였다. 헌재 결정 전 검찰·특검 조사를 거부했던 그는 대통령에서 물러난 후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변호를 맡은 손범규 변호사는 “일반 국민과 똑같다. 검찰이 수사하겠다고 하면 법에 따라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 해 3월 14일 뇌물수수 등 혐의 피의자로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된 이명박 전 대통령도 230자 분량 입장문을 통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경제가 어렵고 안보 환경이 엄중할 때 국민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며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16년 박 전 대통령을 겨눈 이른바 ‘최순실특검’의 수사팀장이었고, 이 전 대통령 소환조사 당시에는 수사를 직접 지휘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으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5번째로 수사기관에 소환된 그의 행보는 사뭇 다르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내란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의 1차 소환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출석시간 변경, 비공개 출석을 요구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한때 국정을 책임졌고, ‘계엄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고 주장했던 윤 전 대통령은 취재진 눈을 피해 지하주차장 출석을 요청했다. 그는 결국 특검 출석·귀가 때 취재진 질의를 묵살하고 포토라인을 지나쳤다. 조사에도 비협조적이었다. 오전 10시 출석해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15시간가량 특검 사무실에 머물렀지만, 실제 조사에 임한 시간은 5시간에 불과했다. 조사자인 박창환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장이 불법체포를 지휘했다며 교체를 요구하고 한동안 신문을 거부했다.
5일 예정된 2차 소환조사에 응하는 과정에서도 신경전은 계속됐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측 요구에 소환 날짜를 지난달 30일에서 지난 1일로 미뤘지만, 윤 전 대통령은 끝내 불출석했다. 5일 오전 9시로 3번째 소환통보를 한 끝에 출석하기로 했지만, 또 출석시간을 늦춰 달라고 요청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에게 출석 요구를 하는 경우 조사 일시·장소에 관해 협의해야 한다’는 규정을 들어 “합의는 물론 협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피의자 인권 보호와 강제 수사는 최소 범위에서 해야 한다는 수사비례 원칙은 중요하다. 하지만 대통령 지시를 따른 군 인사들이 구속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이 줄소환당하는 상황에서 최종 책임자인 윤 전 대통령이 특검과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 나흘 뒤 대국민 담화에서 “법적·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탄핵심판과 수사, 재판에서 ‘책임지는 모습’보다 형사법을 잘 아는 ‘법기술자 모습’만 유감없이 보여줬다. 특검 조사에 성실히 응해 그동안 나온 수많은 의혹·의문에 답하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에 대한 마지막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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