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6·27 대출규제 불가피한 조치

李 “맛보기…부동산 대책 많다”

부동산→증시 자금 이동 바람직

 

지난 8년 역주행 정책 고칠 때

文의 전세대출 尹의 정책대출

주택기금 동원해 집값 부추겨

6·27 대출 규제를 놓고 주택 실수요자에게 피해가 가느니 노·도·강으로 풍선 효과가 번지느니, 손가락질이 한창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값 발작을 가라앉히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가계대출은 4월 5조 원-5월 6조 원-6월 7조 원으로 폭증했다. ‘진보 정부에선 집값이 오른다’는 학습효과도 패닉 바잉을 불렀다. 시장이 충격으로 받아들일 만한 긴급 조치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26전 26패의 문재인 정부 부동산 대책이 반면교사다.

한국 집값은 실물경제보다 대출에 따라 움직이는 금융상품이 된 지 오래다. 역대 정권의 어김없는 정책 실패가 기름을 부었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종합부동산세로 23조 원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5배가 넘는 126조 원이 전세 자금 대출로 나갔다. ‘서민 주거 부담을 덜어준다’는 미명 아래 엄청난 연료를 시장에 퍼부은 것이다. 5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두 배나 뛰어 단군 이래 최악을 기록했다. 얼치기 정책이 낳은 재앙이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대출도 마찬가지다. 청년·출산 가구를 위한다며 디딤돌(주택 구입), 버팀목(전세) 대출을 마구 풀었다. 낮은 금리의 신생아 특례 대출은 지난해 소득 요건까지 2억 원으로 완화했다. 2년간 과거 대비 124% 폭증한 101조 원이 정책대출로 쏟아졌다. 은행들도 환영했다. 정책대출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대상이 아닌 데다, 주택도시기금이 이차(이자 차익) 보전을 해 주었다. 지난해 이차 보전으로 챙긴 돈만 1조3000억 원이다.

금융 당국의 주택담보대출 관리는 소용이 없었다. 국토교통부 소관인 정책대출이 매년 50조 원씩 풀리며 이를 무력화했다. 주담대는 2023년과 2024년에 각각 51조 원, 60조 원 늘었는데 정책대출이 증가분의 90%를 차지했다. 정책대출은 원래 주택기금에서 빌려주고, 한도가 소진되면 은행 창구에서 대출해준 뒤 기금이 이차 보전을 해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내내 전액 은행 창구에서 나갔다. 주택기금이 고갈되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불과 3년 만에 49조 원에서 41조 원이 사라졌다. 국토부는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조금만 잘못해도 기금이 파산할 수 있는 상황”이라 실토했다.

주택기금은 낮은 금리에도 내 집 마련을 위해 넣는 청약통장과 국민주택채권을 발행해 모은 돈이다. 옥탑방·반지하·고시원 등에 사는 서민을 위한 자금이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아파트 공급에 들어가는 사업자 대출은 14조 원으로 32% 증가에 그쳤다. 반면, 버팀목·디딤돌·신생아 특례 등 수요자 대출은 54조 원으로 3배나 폭발했다. 주택 공급에 투입돼야 할 기금이 엉뚱하게 집값 폭등에 동원된 것이다. 사업자 대출이 소홀해지면서 2022년 주택 착공 건수는 전년 대비 34% 감소한 38만 가구, 2023년 24만 가구, 2024년 30만 가구로 줄었다. 공급 감소는 집값 폭등의 또 다른 뇌관이다.

민간기업으로 치면 배임이고 횡령이다. 하지만 지난해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정책자금 대상은 인기 지역의 고가 주택과 다른 만큼 집값 상승의 직접적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우겼다. 대통령을 들먹이면서 “청년층에게 집 사게 돈을 빌려주겠다, 아기 낳으면 대출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며 버텼다. 윤 전 대통령도 국토부를 감싸면서 정책대출은 성역이 돼 버렸다. 정책 엇박자도 심각했다. 주택기금은 집값이 오를 때는 돈줄을 죄고, 내려갈 때 풀어 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하지만 지난 3년간 거꾸로 갔다.

이재명 대통령은 3일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출 규제는 맛보기”라며 “아직 수요 억제책이 많이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시중 자금의 흐름을 부동산에서 증시로 돌리겠다고 했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금융은 부동산에 중독되고, 부동산은 금융에 중독된 중환자 신세다. 방만한 정책·전세대출이 복지제도의 하나로 굳어지는 조짐이다. 더 늦추면 수술이 어렵다. 빚과 집값의 동반 질주에 확실히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정책·전세대출을 더 줄이고 DSR 규제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주택기금 역시 제자리로 돌려놔야 할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대출 규제 효과는 길어야 6개월”이라 경고한다. 화끈한 주택 공급 대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 실패를 막으려면 더는 국토부 사탕발림에 넘어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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