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기준·처벌조항 모두 애매

미국은 혼자 둘수있는 시간도 제한

부산=이승륜 기자 lsr231106@munhwa.com

지난달 24일과 이달 2일, 어린 자녀들만 집에 있다가 화재로 숨지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국내 아동 방임 관련 법제도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진국에선 연령 기준까지 명확히 규정해 아동을 방치할 경우 엄격히 처벌하는 반면, 국내에서는 ‘상황에 따라’ 판단하도록 모호하게 규정돼 있어 문제라는 지적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미국, 영국, 싱가포르, 캐나다 등은 보호자 없이 단독으로 방치하면 안 되는 아동의 연령 기준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실제 미국 워싱턴주는 16세 미만 아동을 혼자 둘 경우 보호자가 최대 1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에서는 낮과 초저녁의 경우 8~9세는 1시간 30분, 10~12세는 3시간까지만 혼자 둘 수 있다. 야간에는 16세 미만 단독 방치를 금지한다.

영국은 아동법과 심각범죄법을 통해 12세 미만, 특히 5세 미만 아동의 단독 방치를 엄격히 금하며 최대 10년 징역형을 부과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16세 미만 아동 방치 시 최대 2년의 징역 또는 5만 캐나다달러의 벌금형에 처한다. 싱가포르는 12세 미만 아동을 보호자 없이 두는 행위를 형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아동복지법은 ‘기본적인 보호·양육·치료 소홀히 하는 아동 방임행위’를 금지하긴 하지만, 단독 방치에 대한 연령 기준이 없다. 전문가들은 아동복지법이 ‘기본 보호 소홀’을 포괄적으로만 규정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연령별 방임 기준을 반영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구영 법무법인 사름 대표 변호사는 “한국은 사후 처벌에 의존하는 반면, 해외는 연령 기준이나 사회 권고 기준을 통해 선제적으로 아동을 보호한다”며 “사전 예방적 관점에서의 입법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화재 등 가정 내 위기 상황에 대비한 아동 대피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화재 대응 교육이 대부분 공공시설을 전제로 이뤄져, 아이 홀로 있는 가정 내 화재엔 취약하다는 것이다. 지난 2일 기장군 아파트 화재에서도 전기 합선으로 차단기가 작동해 내부가 어두워지고 연기가 가득 찬 상황에서 9세와 6세 자매가 출입구를 찾지 못해 숨졌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승륜 기자
이승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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