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준의 Deep Read - 보수 재건의 조건

 

잘못된 명제와 시대착오 속 변화·개혁 거부… 차기 총선-대선 목표로 담대한 혁신해야

‘갈등해소-발전-보수대연합’ 3단계 혁신 수립 필요… 개혁 외면 땐 발전적 해체·대체될 것

국민의힘이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계엄과 탄핵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내란 정당’이라는 파상적인 공격 속에서 당의 존립 자체가 어려운 지경으로 몰렸다.

◇잘못된 명제들

한국갤럽 7월 둘째 주 조사(8∼10일)에서 국민의힘 지지도는 19%로 민주당(43%)에 압도당했다. 보수의 텃밭인 TK와 PK에서조차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크게 앞섰다. 국민의힘은 지난 6·3 조기 대선 패배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뼈를 깎는 혁신은 사라지고, 오만한 여당을 견제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당으로 전락했다.

앨버트 허시먼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책에서 보수주의자들이 개혁을 가로막기 위해 제시하는 전형적 수사적 무기로 세 가지 명제를 제시했다. 뭘 해봤자 역효과만 난다는 ‘역효과 명제’,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어떤 노력도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무용 명제’, 변화나 개혁은 이전의 성취마저 위험에 빠트린다는 ‘위험 명제’다.

한국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에서도 이런 비슷한 잘못된 명제들이 지배하면서 변화와 개혁의 창조적 파괴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왜곡된 현실 인식 속에 갇혀 시대 변화를 읽지 못했고, 여전히 사회 주류라는 허황된 생각 속에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지 않았다.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고 유연하게 변화를 모색하기보다는, 과거의 이념적 틀에 갇혀 새로운 변화를 거부했다. 이것이 외연 확장에 걸림돌로 작용했고, 과거 지향적인 언행으로 보수 전체의 이미지를 ‘수구’로 고착시켰다.

◇정체성 혁신

보수의 재건은 가능할까. 국민의힘이 재건하기 위해선 정체성·인물·조직·전략 등 4가지 차원에서 담대한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첫째, ‘새로운 보수’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 데이비드 캐머런은 2005년 38세 나이에 영국 보수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후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를 기치로 2010년 5월 총선거에서 보수당을 승리로 이끌면서 13년 만의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그가 보수 변혁의 일환으로 내건 ‘빅 소사이어티’는 기존의 국가 중심적인 사회 문제 해결 방식에서 벗어나, 권력의 분산 및 이전을 강조했다. 중앙정부가 가지고 있던 권한과 책임을 지방정부, 지역공동체, 자선단체 등 시민사회 영역으로 이전해 필요에 맞는 해결책을 스스로 모색하고 실행하도록 장려했다. 캐머런은 이를 “현대적 따뜻한 보수주의”라 했다.

국민의힘이 재건하기 위해선 ‘제3의 길’을 가야 한다. 보수의 시각에서 진보의 가치도 담아내고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단순히 자유와 시장, 성장과 동맹 등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것을 넘어, 오세훈 시장의 ‘약자와의 동행’, 안철수 의원의 ‘중도 확장’ 등과 같은 미래 가치를 포용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보수 정당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고 외연을 확장하며 재탄생하는 데 매우 긍정적인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다.

◇인물 혁신

둘째, 개혁적 보수의 정체성과 아이디어를 가진 인물이 당의 중심이 돼야 한다. 미국의 보수주의 역사학자이자 활동가인 리 에드워즈가 강조한 보수 재건의 핵심은 △명확한 원칙에 기반한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실행할 인물과 조직을 구축하며 △궁극적으로 미래 지향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영광에만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하고 대중과 소통하며 다음 세대를 포용하는 보수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누가 개혁 보수인가를 규정하는 것은 특정 시점에 따라 변화하고 당내에서 추구하는 개혁의 방향성 또한 다양하기 때문에 명확히 정의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에 개혁 보수로 분류될 자원이 꽤 있다. 안철수, 오세훈, 한동훈, 장동혁, 윤희숙, 김재섭, 김용태 등이 그런 자원들이다. 이들은 전통적인 보수 색채보다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강조하며,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당내 친윤을 중심으로 한 구주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가 제안한 대로, 이들과 무작정 대립하고 갈등하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며 매력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는 스마트 파워를 발휘해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조직 혁신

셋째, 당 운영 시스템 즉 조직 혁신이다. 국민의힘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 기득권 의식, 폐쇄적인 문화 등을 과감히 청산하고 새로운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한국의 어떤 정당도 시도하지 못한 정당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중앙당 축소, 원외 당 대표 폐지, 강제적 당론 폐지, 공천 혁명, 청년위원회와 여성위원회 위상 강화 등을 통해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과거 1960년대에 김종필이 공화당을 창당하면서 주도했던 중앙당 지배 모델을 이제는 종식시켜야 한다.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받는 비효율적인 중앙당을 대폭 축소하고, 당직 배분권과 공천권을 갖고 모든 정치 과정을 주도하는 당 대표제를 개혁해야 한다.

강제적 당론이 존재하는 한, 의원들은 거수기일 뿐이며, 여야 간 죽기살기식의 대립과 파행을 낳는다. 이제 의원들이 소신과 양심에 따라 의정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특정 계파나 기득권 세력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공천권을 국민과 당원에게 돌려주는 ‘오픈 프라이머리’나 ‘코커스’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이 내년 지방선거와 3년 후 총선에서 당선되는 청년과 여성 정치인의 비율이 20% 이상 되도록 조직 개혁을 하는 것도 주요한 과제다.

◇3단계 전략

넷째, 효율적이고 체계적 전략 수립이다. 제1단계(현재∼2026년 지방선거)는 갈등 해소 단계, 제2단계(지방선거∼2028년 총선)는 보수 재건을 위한 발전단계, 제3단계(총선∼2030년 대선)는 보수대연합 단계다.

위기 극복은 자기성찰-학습-혁신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이뤄진다. 영국 보수당은 1830년대 지주·귀족계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토리당의 몰락 이후 신흥부르주아 세력을 지지 기반으로 삼으면서 현대적인 정당으로 거듭났다. 미국 공화당은 1850년대 휘그당의 붕괴 이후 노예제 확장에 반대하는 다양한 정치세력의 결합으로 탄생했다.

토리·휘그당의 몰락이 주는 함의는 개혁을 거부하는 정당은 새로운 정당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재창당 수준의 대변혁이다. 이를 거부한다면 국민의힘은 발전적으로 해체될 수밖에 없다.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장

■ 용어 설명

‘앨버트 허시먼’은 몰락하는 조직에서 발생하는 ‘이탈·저항·충성’의 행동 유형을 분석한 경제학자.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관점 속에서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의 분배 기능에 주목함.

‘빅 소사이어티’는 캐머런이 이끌었던 영국 보수당이 제안한 정치철학. ‘빅 거버먼트’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지역사회와 민간의 자발적 참여로 발전을 기하자는 개념.

■ 세줄 요약

잘못된 명제들: 국민의힘은 ‘역효과 명제’ ‘무용 명제’ ‘위험 명제’ 등 잘못된 명제들에 사로잡힌 채 시대착오적 인식으로 변화와 개혁을 거부. 이에 보수는 외연 확장을 기하지 못하고 그 이미지가 수구로 고착됨.

혁신의 과제: 보수가 재건되려면 정체성·인물·조직·전략 등 4가지 차원에서 담대한 혁신을 추구해야. ‘새로운 보수’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하며, 개혁적 보수의 정체성과 아이디어를 가진 인물이 당의 중심이 돼야.

3단계 전략: 총선·대선까지 겨냥한 효율적이고 체계적 전략 수립이 긴요함. 갈등 해소-발전-보수대연합 단계를 거쳐 다양한 정치세력과 결합해야. 재창당 수준의 변혁을 거부하면 국민의힘은 발전적으로 해체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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