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통일융합연구원장
외교는 票로 연결 안 된다지만
경제·안보와 직결된 중대 과제
모호성은 안전판 아닌 리스크
8월1일 이전 정상회담이 최선
전작권은 명분보다 현실 보고
한미일 ‘가상동맹’ 강화해야
정치는 종종 상대의 허점에서 기회를 찾는다. 거대 야당의 공세 앞에 계엄이라는 최악의 자충수를 둔 윤석열 전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에게 반전의 발판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단순한 ‘정치적 어부지리’로만 설명하긴 어렵다. 이 대통령의 치밀한 국면 읽기와 대중 친화적 메시지 전략이 적잖이 통한 것도 사실이다. 사법 리스크와 비호감도에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5주째 상승세임이 잘 말해준다. 물론 이번 주 청문회 정국이 변수지만, 신속한 의사결정과 활발한 소통, 주가 상승과 경기 회복 기대가 그를 실용적이고 추진력 있는 경제 대통령으로 조명한다.
그러나 높은 지지율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흔히들 외교는 표(票)로 이어지지 않는다지만, 자원 빈국이자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외교는 곧 경제이자 안보, 국민 생존의 문제다. 북핵 위협, 미·중 갈등, 4강 외교의 복잡한 역학 속에 외교·안보는 지도자의 실력을 보여주는 무대다.
이재명 정부의 최대 뇌관은 한미 관계다. 현 지지율도 이 축이 흔들리면 무너질 수 있다.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더 노골적이고 예측 불가하다. 그의 대한(對韓) 압박은 이미 구체적이다.
첫째, 통상이 시급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8월 1일을 사실상 마감선으로 정하고, 한국에 미국 농산물 수입 확대와 비관세 장벽 완화를 요구한다. 이는 단순한 무역 갈등을 넘어 ‘경제안보’ 협상이다. 첨단산업 품목별 관세와 공급망 리스크가 경제의 급소를 겨눈다. 정부는 산업계와 긴밀히 공조해 정밀한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한다.
둘째, 방위비 분담금과 주한미군 문제는 여전히 동맹의 큰 부담이다. 한국은 주한미군을 대북 억제로 보지만, 미국은 이를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역내 억제력’으로 본다. 이 간극은 방위비 협상은 물론 주한미군의 주둔 구조와 전략적 유연성 문제로 이어져 고도의 해법이 요구된다.
셋째, 전시 작전통제권 전환은 자주국방의 상징 같지만, 동맹 구도를 흔들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전작권 전환은 ‘한국이 책임지라’는 미국 내 기류를 자극하고, 주한미군의 필요성과 규모 재논의로 연결될 수 있다. 트럼프는 이를 방위비, 주한미군, 통상과 연계해 협상 지렛대로 삼아 왔다. 서두르면 주한미군 감축과 동맹 약화로 이어질 수 있어, 명분보다 국익과 안보 현실로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넷째, 미·중 경쟁이 격화된 지금, 전략적 모호성만으로는 한계가 자명하다. 각국이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묻는 시대다. 전략적 모호성은 더 이상 안전판이 아니라 오히려 리스크다. 한국 외교는 좁아진 ‘중간 지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시간이 촉박하다. 현실은 이 대통령이 주도하기보다는 트럼프가 그의 리더십을 재보는 국면이다. 동맹을 중시하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등이 분투하고 있는 건 그나마 다행이지만, 고위급 협상이나 특사 파견만으로는 역부족이다. 8월 1일 전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돼야 트럼프의 ‘데드라인 협상 구도’를 돌파할 수 있다. 그러나 성급한 양보는 트럼프의 압박 전략에 휘말릴 수 있다. 결국 회담은 서두르되, 무리한 양보 없이 치밀하게 임해야 하는 난제가 이 대통령 앞에 있다. 이념과 정파를 넘어 외교·안보 전문가들, 산업계와 기업 리더들이 ‘원팀’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이제는 트럼프에게, 왜 한미동맹이 전략적 가치가 있는지 정답을 제시해야 한다. 대미 투자, 미국산 에너지 수입, 방산·조선 협력, 첨단기술·공급망 공동 구축 등을 아우르는 ‘전략적 가치 패키지’로 설득해야 한다. 한미일 3자 ‘가상동맹(Virtual Alliance)’도 실용적으로 계승·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동시에, 주요 7개국(G7)과 나토(NATO) 등 ‘트럼프 리스크’를 공유하며 글로벌 규범을 수호하는 중견국들과 연대도 강화해야 한다. 이들과 보조를 맞추고 외교 공간을 넓히며, 트럼프의 돌발적 협상에 공동 대응할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
외교는 상대의 실수에 기대어 완성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권력을 얻은 정치의 기술을 넘어 국익을 지켜낼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 외교는 인기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생존이 걸린 치열한 전장이다.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2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