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죽음의 자서전’ 수상

지하철역서 쓰러진 뒤 영감

세월호 사태 등 사회적 비극

49편의 시에 담아 승화시켜

 

번역가 박술·볼프 함께 영예

독일 공공기관 ‘세계 문화의 집’의 국제문학상 수상자로 17일 선정된 김혜순 시인. 이번 수상작인 ‘죽음의 자서전’을 포함한 ‘죽음 트릴로지’가 최근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출간됐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독일 공공기관 ‘세계 문화의 집’의 국제문학상 수상자로 17일 선정된 김혜순 시인. 이번 수상작인 ‘죽음의 자서전’을 포함한 ‘죽음 트릴로지’가 최근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출간됐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김혜순(70) 시인이 독일 공공기관 ‘세계 문화의 집(HKW)’이 수여하는 국제문학상을 아시아인 최초로 받았다. 지난 2월 독일어로 번역 출간된 시집 ‘죽음의 자서전’(사진)이 수상작으로 결정된 데 따른 것이다. 김 시인은 최근 해외 주요 문학상을 연이어 수상하면서 문학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HKW는 17일(현지시간) 독일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올해 국제문학상 수상자로 김 시인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상은 작가와 번역가에게 공동으로 수여되는 것이어서, 박술(39)·울리아나 볼프(46) 번역가도 함께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독일 총리실 산하 공공기관인 HKW에서 지난 2009년 시작한 국제문학상은 그해 독일어로 번역된 현대문학에 주어지며, 독일 문단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김 시인은 ‘죽음의 언어’를 통해 강렬하고 독창적인 시 세계를 구축해온 한국 대표 여성 시인이다. 2016년 작 ‘죽음의 자서전’은 시인이 메르스와 세월호 침몰 등 사회적 비극에서 비롯된 죽음들을 떠올리며 49편의 시를 써서 엮어낸 것이다. 2015년 지하철에서 쓰러지며 죽음을 떠올리게 된 시인은 개인적 고통을 사회적 고통으로 확장시켰다. 그리고 떠난 이를 기리는 49재(齋) 동안 매일 죽음의 여러 모습들을 시로 써냈다. 시집은 대산문화재단의 출판 지원을 받은 독일 출판사 피셔에 의해 지난 2월 번역본으로 출간됐다.

HKW 심사위원단은 만장일치로 수상자로 결정했다면서 “김혜순 시의 의미는 종종 불가사의함 속에 명확히 드러난다”며 “텍스트들은 리듬을 따라 반복해서 읽을수록 열리고, 이미지들은 이미 올바르게 선택한 뒤에야만 비로소 보이는 방향처럼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5월 김 시인이 국제문학상 최종 후보로 선정됐을 당시 심사위원인 소설가 데니즈 우틀루는 “죽음의 모국어로 생성된 시들의 번역본”이라며 “저승의 문턱에서 만들어지는 울림을 그대로 들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김 시인은 국제문학상 제정 이래 최초의 아시아인 수상자이며, 시집으로 상을 받은 첫 수상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 독일어 번역본으로 2017년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현재 한국에 있는 김 시인은 화상으로 HKW에 “번역자와 HKW 및 심사위원들, 독일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죽음의 자서전 영어번역본으로 2019년 캐나다의 ‘그리핀시문학상’을 한국인 최초 수상하기도 했는데, 당시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어간 불쌍한 많은 영혼들에게 이 수상의 영광을 드리고 싶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김 시인은 뒤이어 2021년 스웨덴 시카다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또 다른 시집 ‘날개 환상통’ 영어판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해 국제적 이목을 끌었다. 4월 미국 예술·과학아카데미(AAAS) 회원으로도 선출됐다.

인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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