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 (59) 공중전

 

날개를 단 이카로스

천마 탄 발퀴레 여신들

아라비아 양탄자…

인간의 날고 싶은 열망이

신화·예술에 반영되고

과학을 통해 현실화

 

“화염이 모든 것을 삼켰다”

보니것 소설 ‘제5도살장’

폭격의 추악함 고발

‘지옥의 묵시록’ 속 공중전

전쟁의 광기 드러내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고대 신화 속 이카로스(위)와 세계를 전쟁의 화염에 휩싸이게 한 첨단 전투기들. 공중전은 끔찍한 살육을 불러올 수 있지만, 사람들은 오랫동안 비행을 동경하고 그 아름다움에 매료돼 왔다. 게티이미지뱅크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고대 신화 속 이카로스(위)와 세계를 전쟁의 화염에 휩싸이게 한 첨단 전투기들. 공중전은 끔찍한 살육을 불러올 수 있지만, 사람들은 오랫동안 비행을 동경하고 그 아름다움에 매료돼 왔다. 게티이미지뱅크

비행 물체들이 살육을 위해 날아다닌다. 중동, 우크라이나, 어제, 오늘, 내일, 언제나.

공중전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관점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공중전은 신화적이고, SF적이고, 역사적이고, 끔찍하다. 한마디로 인류의 초상화는 공중에 그려진다.

공중전은 그 끔찍함에도 불구하고 영화 ‘탑건 매버릭’(2022)이나 ‘태양의 제국’(1989)이 보여주듯 화려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고, 그렇기에 늘 필름과 음악 예술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공중전이라면, ‘지옥의 묵시록’(1979)의 한 장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바그너의 음악 ‘발퀴레의 기행’을 틀어 놓고 광기에 젖은 킬고어 중령의 헬리콥터 부대가 베트남의 한 마을을 초토화하는 장면 말이다.

‘발퀴레의 기행’ 자체가 공중전이 지닌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음악이다. ‘지옥의 묵시록’에 훨씬 앞서, ‘발퀴레의 기행’으로부터 현대 전투기의 화려한 비행을 발견한 작가는 프루스트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편 ‘되찾은 시간’은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데, 한 인물(생루)은 파리를 침공한 독일 전투기에서 발퀴레를 목격한다. “‘사이렌 소리는 꽤 바그너적이지 않아? 게다가 독일인의 도착을 경배하기 위해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발퀴레들이 아니라 정말 비행사인지 물어볼 뻔했다고.’ 그는 비행사들과 발퀴레들을 동일시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듯했으며, 게다가 그 동일시를 순전히 음악적인 이유로 설명했다. ‘정말이지, 사이렌 음악은 ‘발퀴레의 기행(騎行)’이었어. 파리에서 바그너를 듣기 위해서는 결국 독일군의 도착이 필요했던 거야.’…편대에서 편대로 각각의 비행사가 이제 하늘 속으로 이동한 도시에서 발퀴레처럼 돌진했다.”(김희영 역) 소설의 주인공은 이를 “하늘 속에서 벌어지는 묵시록의 장면”이라 일컫는다.

발퀴레는 최근까지도 놀라운 아름다움을 지닌 비행체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가시화되었다. 1980년대 초에 나온 애니메이션이자 후에 슈팅 게임으로도 만들어지는 ‘마크로스’의 발키리(로봇 변신 전투기의 시초 격), 북구의 신화를 다루는 ‘갓 오브 워4’(2018)에 등장하는 멋진 날개를 지닌 발키리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발퀴레들 자체가 이미 고대 전설 속에서부터 공중전을 주도하는 비행체들이다. 바그너가 악극 ‘발퀴레’ 3막을 시작하며 ‘발퀴레의 기행’과 더불어 묘사하는 것은 천마(天馬)를 타고 전쟁 중에 죽은 영웅들을 신들의 성 발할로 운반하는 발퀴레들의 모습이다. 이처럼 문명이 지닌 신화적 열정은 비행체에 사로잡혔고, 비행기의 제작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비행의 역사가 생겨났다. 인류는 공학을 통해서 날 준비를 하기 위해 신화 속에서 먼저 수없이 많은 비행체를 날려 보냈다. 새의 깃털로 만든 날개로 날아오른 이카로스, 북유럽 전쟁의 여신 발퀴레, 아라비아의 날아다니는 양탄자, 10만8000리를 나는 손오공의 근두운. 이런 날아다니는 전사들을 담은 신화가 과학으로 하여금 현대 공중전에 가닿을 수 있도록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기 스케치는 이런 신화적인 비행과 공학적인 비행기의 중간쯤에 있을 것 같다.

1차 세계대전 독일 전투기의 비행에서 발퀴레의 모습을 목격한 프루스트처럼 예술가들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비행기 또는 공중전에서 아름다움을, 또는 인간의 근원적인 심성을 발견해 왔다. 20세기로 진입한 1911년, 메이지 시대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는 ‘비행기’라는 시를 쓰고 있다. “보라, 오늘도 저 파란 하늘에/비행기 높이 나는 것을//급사 일하는 소년이/이따금 쉬는 일요일,/폐병 앓는 엄마와 단둘이 사는 집에 틀어박혀/혼자서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는 지친 눈동자…//보라, 오늘도 저 파란 하늘에/비행기 높이 나는 것을”(손순옥 역) 시인에게 비행기는 고달픈 삶의 탈출구처럼 하늘에 떠 있다. 김수영은 1955년에 쓴 시 ‘헬리콥터’에서 전쟁과 함께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선 이 비행체에 정서를 투영한다.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예이츠가 1918년에 쓴 ‘어느 아일랜드 비행사가 자기 죽음을 예견하다’ 역시 인간의 복잡한 심경과 운명을 전투 비행에 투영하고 있다.

하늘은 자신이 얼마나 높은지, 얼마나 자유로운 곳인지 비행기를 통해서 인간에게 보여준다. 바로 그렇기에 현대 공학의 최첨단에 자리한 이 복잡한 기계는 인간의 예술 속에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가지고서 받아들여져 온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예술과 무관하지 않은 게임 역시 비행기와 공중전에 늘 빠져들었는데, 캡콤이 1984년 출시한 ‘1942’가 상징적인 예가 될 것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 포스터
영화 ‘지옥의 묵시록’ 포스터

그러나 예술이 공중전에 아무리 빠져들더라도 공중전은 있어서는 안 되는 전쟁의 한 얼굴일 뿐이다. 그 추악한 얼굴을 고발하는 고전적인 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1969),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1973), 그리고 W G 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2001)이 그것이다. 모두 20세기의 거장들이 썼지만, 서로 성격이 매우 다른 이 작품들은 2차 대전 중의 공중전 또는 폭격이라는 주제를 실 삼아 연결되고 있다.

“바깥에는 불이 폭풍처럼 번지고 있었다. 드레스덴은 하나의 거대한 화염이었다. 이 하나의 화염이 유기적인 모든 것, 탈 수 있는 모든 것을 삼켰다.…드레스덴은 이제 달 표면 같았다.”(정영목 역) ‘제5도살장’의 한 구절이다. 이 소설은 독일 드레스덴의 제5도살장(포로 수용소로 개조된 도살장)에 수용된 미군 포로의 눈을 통해 본 드레스덴 폭격을 고발하고 있다. 드레스덴으로 이송되는 미군 포로들은 안도한다. “우리는 오늘 드레스덴으로 떠나고 있어. 걱정 마. 그곳은 절대 폭격을 당하지 않을 거야. 그곳은 비무장 도시야.” 그러나 그곳은 폭격으로 초토화되었고, 엄청난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제발트의 강연록 ‘공중전과 문학’은 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이 문제 삼은 끔찍한 독일 폭격을 독일인 스스로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이런 문제 제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수용소에서 수백만의 사람을 학살하고 죽도록 착취했던 민족이, 승전국에 자국 도시의 파괴를 명령한 군사정치적인 논리가 무엇이었는지 밝히라고 요구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그 이유일지 모른다.”(이경진 역) 그런데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쾰른과 함부르크와 드레스덴에서 겪었던 화염의 밤들을 생각할 때면 다음의 사실도 떠올려야 한다.…훗날의 드레스덴처럼 당시 난민들의 물결로 넘쳐나던 스탈린그라드시는 1200대의 전투기로 폭격을 당하고 있었으며, 공중폭격이 진행되는 동안 볼가강 건너편에 주둔해 있던 독일군들 사이에서는 그 공습으로 4만 명에 이르는 러시아인들이 희생되었다는 소식에 환희의 감정이 퍼져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니것이 ‘제5도살장’에서 전하는, 2차 대전 승전을 확인하는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성명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는 독일인이 V1과 V2를 늦게 얻어냈고, 그것도 제한된 양만 얻어냈다는 것을 신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 두 가지 로켓은 독일이 영국에 보복하기 위해 만든 무기들이다. 그리고 ‘제5도살장’의 이 대목에서 잠깐 언급된 이 V2를 둘러싼 장대한 서사가 바로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이다. 핀천은 대륙에서 런던을 향해 날아오는 독일의 로켓 V2(또는 A4)의 무서움을 이렇게 기록한다.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음속보다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도착 소식은 먼저 폭발로 전해진다. 그러고도 네가 만약 살아 있다면, 그때서야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다.”(이상국 역) 이 소설은 V2 로켓이 발사되면 신체가 반응하여 발기하게 되는 미군 슬로스롭을 통해 V2의 궤적을 추적하는 다소 익살스러운 발상을 가지고 있다. “본체보다 미리 나타나는 어떤 환영들, 또 하나의 로켓이 슬로스롭에게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설정 배후에서 이 소설이 드러내는 것 가운데 하나는 군수산업을 담당한 독일 기업과 미국 기업의 감춰진 연계이다. “제너럴 일렉트릭이 여기 나와 뭐 하는 거야?…이제 GE가 여기 지멘스와도 관계를 갖고 있어. 그들은 V2 유도 쪽 일을 했지.”

지상을 걸어 다니는 동물인 인간이 주제넘게 하늘을 탐내고 공중전을 만들었다. 인간에게 날아다닌다는 것은 발퀴레의 모습에서 보듯 장엄하고 성스러운 것이기도 하며, 공중전의 학살이 보여주듯 인간의 어두움을 뿌려 세상을 슬픔에 잠기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인간은 화성으로, 그 너머로 날아가는데, 여전히 그의 우려스러운 습성, 정복과 자유의 실현을 구별하지 못하는 습성을 함께 가져간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용어 설명 - 발퀴레의 기행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 가운데 ‘발퀴레’ 3막에 등장하는 음악으로 8명의 발퀴레가 등장한다. 발퀴레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존재다. 이들은 하늘에서 백마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전장에서 죽은 영웅들을 최고의 신 오딘에게 데려간다. 이 음악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1979)에 쓰이며 다시 한 번 유명해졌다. 미국 군인들이 베트남의 한 마을에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하는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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