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현 과학콘텐츠그룹 갈다 대표
몽골 초원서 쏟아질 듯한 별빛
서울선 인공 불빛에 막혀 못 봐
현재 우리가 보는 별들의 모습
수십 수백 년 전 출발했던 과거
타인과 100% 공감하긴 힘들어
별처럼 넓고 옅은 공감 어떨까
별을 보는 걸 좋아한다. 인공 불빛이 많은 도시 한가운데서는 별을 열 개도 찾기 힘들다. 밝은 도시에서 간신히 만나는 별이어서인지 볼 때마다 늘 아련하다. 고층운이 옅게 낀 날 보는 별도 좋아한다. 구름 때문에 별빛이 퍼져서 아스라한 느낌이 좋다. 구름이 오락가락하는 날 밤 구름 사이로 보이는 별도 좋다. 별이 나오길 기다리는 그 마음을 느끼는 게 좋다. 그래도 맑은 밤하늘에서 촘촘하게 빛나는 별을 보는 게 가장 행복하다.
몽골에 간 적이 있다. 순전히 별을 보러 가는 여행이었다. 울란바토르에서 두어 시간을 차로 이동해서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천체사진가들과의 동행이어서 밤엔 별을 보고 낮엔 잠을 자는 일정이 이어졌다. 도심에서 벗어난 몽골의 밤하늘은 인공 불빛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칠흑과 같은 하늘이었다. 별들이 쏟아지듯 보였다. 문득 200년 전 누군가가 몽골 그곳에서 나처럼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의 밤하늘은 어땠을까? 2000년 전 누군가가 그곳 몽골에서 나처럼 밤하늘을 바라보았다면 그 밤하늘은 또 어땠을까?
밤하늘에서 별을 보기 힘들어진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인공 불빛이다. 몽골의 그곳에서는 내가 봤던 밤하늘이나 200년 전 누군가가 올려다본 밤하늘이나 2000년 전 우리들의 조상 누군가가 쳐다본 밤하늘이 비슷하게 어두웠을 것이다. 그들이 보던 만큼의 별을 나도 본다고나 할까. 내가 사는 서울에서는 별이 있는지도 잊어버릴 정도로 인공 불빛이 압도적이다. 200년 전 한양의 밤하늘은 지금 내가 보는 서울의 밤하늘과 달랐을 것이다. 2000년 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 깜깜한 밤하늘을 찾아가는 여행을 한다.
몽골 그곳에서 밤마다 맨눈으로 별을 봤다. 각기 다른 과거로부터 출발한 별빛을 내 눈을 통해서 한순간에 보는 감흥을 만끽했다. 우주에서 최고로 빠른 것은 빛이다.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빛은 1초에 30만㎞ 정도만 나아간다. 빛이 지구에서 달에 도달하는데 1.3초 정도 걸린다. 태양까지는 8분20초 정도.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의 속도로 움직여도 드넓은 우주 공간을 충분히 빨리 여행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빛의 속도로 1년 동안 움직인 거리를 1광년(光年)이라고 하는데, 9조4670억7782만㎞ 정도나 된다. 몽골의 가을 밤하늘은 그야말로 별들로 꽉 차 있었다. 지구로부터 그 별들까지의 거리도 대개 ‘광년’ 단위로 나타낸다.
가을철 밤하늘에 높이 솟아 보이는 별자리 가운데 하나가 카시오페이아자리다. 다섯 개의 이등급 별들이 주축을 이루는 별자리다. 위치에 따라서 더블유(W)자로도 보이고 엠(M)자로도 보인다. 이 별들이 다 같은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기 다른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카이오페이아자리에서 제일 밝은 별인 알파별은 ‘쉐다르’라는 고유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 별까지의 거리는 약 230광년이다. 이 별까지 가려면 빛의 속도로 230년을 가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이 별로부터 출발한 빛이 230년 동안 우주 공간을 여행한 후 내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별의 현재가 아닌 230년 전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카시오페이아자리의 또 다른 별인 엡실론별은 ‘세린’이라는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다. 이 별까지의 거리는 약 410광년이다. 410년 전에 그 별에서 출발한 빛을 우리는 지금 보는 것이다. 카시오페이아자리의 별들은 한 곳에 모여 있는 게 아니라, 각각 다른 곳에서 각기 다른 시간에 출발해 우리에게 도착한 것이다.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의 모습은 모두 과거의 모습이다. 떨어진 거리만큼의 과거 모습이다. 밤하늘은 온통 과거로 꽉 차 있다.
과거로 가득한 밤하늘을 보면서 나는 종종 공감의 반경을 생각한다. 달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늘 1.3초 전에 지구의 모습을 볼 것이다. 카시오페이아자리 알파별 옆에 지구 같은 행성이 있다면 그곳에서 태양을 바라보는 사람은 늘 230년 전의 태양의 모습을 볼 것이다. 그 거리만큼의 시간 간극 그리고 그 시간 간극만큼의 거리. 그 간극만큼의 시공간에 대해서 우리는 영원히 결코 알 수 없다. 밤하늘의 별을 볼 때면 늘 이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된다.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이런저런 공감을 하게 된다. 모든 것에 100% 공감할 수는 없다. 별과 우리 사이의 시공간 간극처럼 사람들 사이의 공감 크기도 이를 원용해서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에 전적으로 공감하겠다는 이상향보다는 서로의 근원적 한계를 인정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만큼의 시간과 거리에 해당하는 반경을 설정해 보면 어떨까? 따지고 보면 외면하지 않는 것도 약한 공감이고, 묵인하는 것도 사실은 소극적인 공감이다.
공감의 반경을 넓혀서, 멀리 떨어져서 희미하게 보이지만 여전히 연결돼 있는 어두운 별도 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공감의 반경을 넓혀서 그 반경의 끄트머리에 옅은 공감대를 많이 마련한다면 좋겠다. 세상은 넓어진 공감의 반경으로 얽힌 포용의 네트워크로 넘쳐날 것이다. 각기 다른 과거로부터 날아와서 내 눈에 한순간에 모인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넓고 옅은 공감의 반경들이 서로 만나서 만들어내는 포용의 네트워크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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