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프로야구 트레이드의 역사

 

다인원 트레이드

역대 최다인원 2015년 롯데-KT 5대4 트레이드

올해 NC-KIA 3대3 성사… 근래 보기 드문 대규모

 

마감일 트레이드

1998년 조규제·2017년 김세현 영입으로 팀 우승

올해 정상 도전 한화 ‘역대 최다안타’ 손아섭 품어

 

역사적 트레이드

1992년 김재박 이적이 최초 ‘무상 트레이드’ 사례

‘최동원 ↔ 김시진’ ‘양준혁 ↔ 임창용’ 팬들도 큰 충격

위 사진은 31일 NC에서 한화로 트레이드된 손아섭. 손아섭은 KBO리그 통산 최다 안타 1위에 올라 있다. 아래 사진은 1988년 삼성의 김시진 등과 3대 4로 트레이드됐던 고 최동원이 2009년 7월 롯데 유니폼을 입고 사직구장 마운드에 올라 시구하는 장면.  NC 제공·연합뉴스
위 사진은 31일 NC에서 한화로 트레이드된 손아섭. 손아섭은 KBO리그 통산 최다 안타 1위에 올라 있다. 아래 사진은 1988년 삼성의 김시진 등과 3대 4로 트레이드됐던 고 최동원이 2009년 7월 롯데 유니폼을 입고 사직구장 마운드에 올라 시구하는 장면. NC 제공·연합뉴스

프로야구 트레이드 마감일이었던 31일 밤 오후 8시. 프로야구계가 크게 술렁였다. 올여름 이적 시장에서 외야수를 찾고 있던 한화가 트레이드 마감일 극적인 ‘버저비터’를 터뜨렸기 때문. 한화는 트레이드 마감 4시간을 앞두고 NC에 현금 3억 원과 2026년 신인드래프트 3라운드 지명권을 주고 특급 외야수 손아섭을 받았다.

손아섭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다. 손아섭이 때린 통산 2583안타는 프로야구 역대 최다 기록이다. 2025 신한 쏠(SOL) 뱅크 KBO리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한화는 “통산 최다 안타 기록 보유 선수이자, 최근 10년 내 포스트시즌 통산 출루율+장타율(OPS) 1.008에 달하는 손아섭이 가을 야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에 앞서 지난달 28일엔 NC와 KIA가 6명의 선수를 바꾸는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NC는 KIA에 투수 김시훈과 한재승, 내야수 정현창을 내줬고, KIA는 외야수 최원준과 이우성, 내야수 홍종표를 보냈다. 총 6명의 선수가 유니폼을 바꿔 입는 3대3 트레이드였다.

NC와 KIA의 트레이드는 근래 보기 드문 초대형 트레이드다. 역대 KBO리그 최다 인원 트레이드는 2015년 롯데와 KT의 5대4 트레이드로, 당시 롯데는 장성우, 최대성, 윤여운, 이창진, 하준호를 주고, KT는 박세웅과 이성민, 안중열, 조현우를 보냈다.

◇역대 7월 트레이드 역사= KBO리그에서 트레이드라는 개념이 잡힌 것은 2000년대 이후였고, 7월 트레이드 시장은 매년 뜨거웠다. 그래서 7월은 프로야구에서 ‘트레이드의 달’로도 불린다.

역대 트레이드를 보면,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지금까지 총 368건의 트레이드가 성사됐는데, 이 중 7월에 진행된 트레이드는 모두 43건(방출 후 이동 제외)에 달했다. 역대 트레이드의 약 8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 이른바 ‘라스트 미닛(Last minute) 트레이드’로 불리는 7월 31일에 거래된 이적은 올해 손아섭까지 모두 10건이었다.

그런데 트레이드 마감일에 진행된 트레이드 중 ‘우승’을 만든 트레이드가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1998년 현대와 쌍방울의 트레이드였다. 당시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했던 현대는 쌍방울 마무리 투수 조규제를 얻기 위해 현금 6억 원과 박정현, 가내영을 내줬다. 또 그날 현대는 좌완 최창호를 내주고 LG 교타자 박종호를 얻었다. 투타에서 전력을 더 탄탄히 만든 현대는 그해 가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017년 7월 31일 KIA와 넥센(현 키움) 트레이드도 우승을 만든 트레이드로 평가된다. 그해 정규리그에서 1위를 질주 중이던 KIA는 넥센의 마무리 김세현을 영입하면서 애지중지 키운 1라운드 지명자 이승호와 손동욱을 건넸다. 이 한 수는 적중했다. 김세현은 그해 한국시리즈 4경기에 등판해 모두 6.2이닝을 던지며 무실점으로 역투했고, KIA는 8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야구 역사를 바꾼 충격 트레이드= 트레이드는 말 그대로 구단 간의 ‘선수 교환’이다. 목적은 당연히 전력 강화. KBO 전체 트레이드 역사를 살펴보면, 최초의 트레이드는 출범 원년인 1982년 12월 7일이었다. 삼성 서정환이 해태로 현금 트레이드됐다. 서정환은 이듬해인 1983년부터 해태의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고, 호랑이 군단 우승 신화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프로야구 역사를 바꾼 트레이드도 꽤 많았다. 2011년 7월 31일, 가을 야구를 꿈꾼 LG는 마운드 보강을 위해 넥센에서 투수 송신영과 김성현을 영입했다. 당시 LG가 내준 카드는 심수창과 박병호였다. 트레이드 이후 미완의 거포였던 박병호의 파워가 폭발했다. 이듬해 정규시즌 MVP와 홈런왕을 석권했다. 박병호는 2012년부터 4년 연속 홈런왕에 오르며, KBO리그 대표 홈런타자로 자리매김했다. 박병호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앞세운 넥센 역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포스트시즌에 계속 진출했다.

KBO리그에서 가장 충격적인 트레이드는 1988년 최동원 트레이드가 첫손에 꼽힌다. 그해 11월 22일 롯데가 최동원, 오명록, 김성현을 삼성으로 보내고 삼성은 김시진, 전용권, 오대석, 허규옥을 내줬다. 최동원과 김시진은 양 구단을 상징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특급 투수들’의 이동에 야구계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약 한 달 뒤인 12월 20일 양 팀은 다시 트레이드 카드를 맞췄다. 삼성 외야수 장효조와 롯데 내야수 김용철이 포함된 2대2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롯데는 김용철과 투수 이문한을, 삼성은 장효조와 장태수를 내보냈다. 양 구단이 구단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선수들을 넘긴 데는 이유가 있었다. 두 선수 모두 프랜차이즈 스타로, 당시 선수 노동조합 결성과 연봉 협상 과정에서 구단과 큰 마찰을 빚었다. 그래서 구단이 꺼내 든 선택은 ‘내보내기’였다. 사실상 6대5 트레이드는 당시 프로야구계는 물론, 팬들 모두 충격에 빠뜨렸다. 트레이드 후 이적에 강한 불만을 터뜨린 김시진이 한 달 넘게 잠적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선수가 트레이드에 강력하게 반발한 사례는 또 있었다. 1998시즌이 끝난 뒤 이뤄진 삼성 양준혁과 해태(현 KIA) 임창용의 트레이드였다. 삼성은 당시 마운드 강화를 위해 양준혁, 곽채진, 황두성, 그리고 현금 20억 원을 내주고 해태의 투수 임창용을 영입했다. 해태는 재정난 해소를 위해 팀 내 최고 투수 임창용을 매물로 내놓았다. 당시 양준혁은 강력히 반발했다. 은퇴 얘기까지 꺼내며 맞섰다. 양준혁은 김응용 해태 감독의 설득으로 이적을 받아들였다. 양준혁은 LG를 거쳐 김응용 감독이 삼성 사령탑으로 이적한 2002년 자유계약선수(FA)로 친정 삼성에 복귀했다.

◇무상 트레이드 사례도= 스포츠에서 트레이드는 물물교환(?)이 중심이다. 실제 트레이드의 사전적 의미는 전력 향상을 목적으로 소속 선수를 이적시키거나 교환하는 일. 하지만 조건 없는 ‘무상 트레이드’ 사례도 꽤 많았다. LG는 1992년 2월 구단 최고 스타였던 김재박을 대가 없이 태평양으로 보냈다. 선수는 물론, 현금 한 푼 받지 않는 사상 최초의 ‘무상 트레이드’ 사례였다. LG는 1991시즌 뒤 김재박에게 은퇴를 종용했지만, 300도루(당시 -26개)와 1000안타(당시 -89개)에 미련이 남았다. 결국 LG는 조건 없이 태평양으로 보내주는 ‘아름다운 이별’을 택했다.

김재박은 1년 더 뛰었지만, ‘300도루-1000안타’ 달성에 실패했다. 1993년 현역에서 물러난 김재박은 태평양에서 코치를 맡으며 지도자로 변신했고, 이후 1996년 후신인 현대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공교롭게도 김재박은 2007년 LG 1군 지휘봉을 잡고 복귀했고, 2009년까지 팀을 이끌었다.

정세영 기자
정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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