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미 논설위원

김건희특검이 지난달 25일 김 여사 오빠의 장모 자택 압수 수색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 작가의 ‘프롬 포인트(From Point)’ 연작 1점을 확보했다. 작가가 1970∼1980년대에 작업한 ‘프롬 포인트’는 ‘프롬 라인(From Line)’ 연작과 함께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긴 시리즈다. 작가는 동물성 풀을 혼합한 광물성 안료를 듬뿍 묻혀 빈 캔버스에 점을 찍어 나간다. 진하게 시작된 점은 점점 옅어지다 마지막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소멸해가는 점, 점과 점 사이의 공간, 이 둘이 만드는 고요한 리듬은 삶과 죽음, 유한과 무한, 시간의 흐름을 은유한다. 작가는 “세상 모든 존재는 점에서 출발”하고 “점과 점 사이 공간, 여백에는 무궁한 세계가 있다”며 “존재는 흔적이고 그 흔적이 쌓여 시간의 흐름이 된다”고 말했다. 연작 가격은 한 점당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이른다. 2021년 경매에선 22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특검은 이 그림이 대가성 뇌물일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 중이다.

고가의 미술품은 환금성, 이동의 용이성, 거래 경로의 불투명성 때문에 전 세계에서 돈세탁, 뇌물과 비자금 조성의 수단으로 쓰여 왔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 특검 수사 당시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1964년 작 ‘행복한 눈물(Happy Tears)’이다. 삼성 일가가 해외 경매와 갤러리를 통해 비자금으로 구입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세계적인 작품은 예술품이 아니라 로비와 검은돈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뜨거운 관심과 달리 사건은 ‘실소유주 불명’ ‘자금 출처 미확인’으로 마무리됐다. 앞서 1999년에는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이 정관계 실력자 등을 상대로 한 ‘그림 로비’ 의혹이 불거지면서 검찰이 여의도 63빌딩 지하창고에서 김기창 화백의 작품 등 203점을 압수·확보하기도 했다. 이 역시 그림이 로비·뇌물로 유출된 증거나 정황을 밝히지 못한 채 ‘실패한 로비’로 종결됐다.

이번에 특검이 확보한 그림에 대해 김 여사 측은 “김 여사는 전혀 모르고 아무 관련 없는 타인의 재산”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술품 로비는 가격·거래·자금·이동의 불투명성과 소유의 익명성 등으로 추적이 매우 어렵다. 이번에는 소유주가 밝혀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최현미 논설위원
최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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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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