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희 경제부 차장

미국의 상호관세 발효를 불과 이틀 앞두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극적 타결된 한미 관세 협상의 결과를 압축하자면 조선·제조업 등 국내 기업의 대미 투자 확대로 농축산물 시장을 지켜낸 형국이다. 정부 협상단의 끈질긴 협상의 밑바탕에는 협상 카드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들의 적극적 협력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협상의 결과로 한국은 자의든 타의든 대미 투자와 경제 협력을 확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기업들이 이번 협상에 적극적으로 일조한 만큼 향후 한미 경제 협력 과정에서 나타날 각종 효과 또한 국내 기업들의 새로운 기회로 활용돼야 한다.

협상팀은 이번 협상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주요 기업 총수들이 속속 방미했던 것에 관해 “그 부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물론 이번 협상 과정에서 기업들의 역할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많이 도움이 됐고, 특별히 고맙다는 말씀을 전한다”고 언급하기는 했지만, 이들이 ‘대미 투자’ 카드를 마련함에 있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상술하지 않았다.

6·3 조기 대선으로 한국의 협상팀은 7월 이후에 완전한 진용이 새로 갖춰진 만큼 대미 협상 준비에 시간이 촉박했다. 이번 협상의 ‘통상 3인방’ 중 한 명인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6월 12일 부임 후 실무협상팀 구성 일부를 교체했다. 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8일에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정관 산업부 장관의 임명을 재가했다.

물론 여 본부장과 김 장관은 한 차례 방미 일정이 무산된 구 부총리가 지난달 29일 출국하기 전까지 ‘고초(苦楚)’라는 표현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직접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구 부총리가 협상 결과를 설명하며 미국 설득의 주요 카드가 됐다고 언급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

정부는 이 같은 ‘마스가’ 카드를 만들기 위해 한미 조선 협력의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 현지의 필리조선소에 대한 한화그룹 측의 자료를 샅샅이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펀드에는 반도체, 원전, 2차전지, 바이오 등 한국의 경쟁력 있는 산업 분야가 주를 이룬다. 정부가 대미 투자 펀드 카드를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관련 기업들의 자료와 계획들을 총정리했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관세 완화의 혜택이 기업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기업들의 이런 역할이 당연하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협상에서 미국이 압박을 가한 것은 상호·품목관세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쌀·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할수록 한국의 대미 투자 규모는 1000억 달러, 2000억 달러, 3500억 달러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가 대 국가 간의 협상에서 세세한 협의 과정, 이와 연관된 각종 물밑 접촉·조율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통례이긴 하다. 그러나 향후 한미 관세 협상의 결과로 예상되는 효과에서마저 국내 대미 수출 기업들의 역할이 물밑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박준희 경제부 차장
박준희 경제부 차장
박준희 기자
박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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