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 이홍기 한국수소 및 신에너지학회장
우리나라가 수출 강국으로 성장한 비결은 바로 안정적이고 저렴한 에너지였다. 1960년대 경제개발 초기부터 지금까지 에너지는 항상 우리 산업 발전의 핵심 동력이었다. 2050년 탄소중립 시대를 맞아 ‘청정’이라는 조건이 추가되었지만 에너지 정책의 본질 목표는 여전히 동일하다. 안정적이면서도 경쟁력 있는 에너지 공급이 국가 산업 경쟁력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정책 강화와 저가 중국산 제품의 시장유입으로 우리 산업계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위기에 몰린 석유화학업계가 전기요금의 10~12% 절감을 촉구하고, 철강업계가 산업 경쟁력 유지를 위해 저렴한 원자력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에너지가 여전히 산업 경쟁력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기후 위기 대응과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이중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동시 확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원자력으로 에너지 가격 부담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면서, 재생에너지로 청정에너지 공급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상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특정 송전 구역에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동시에 늘어나면 구조적으로 전력망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햇빛이 좋은 호남 지역에는 태양광 발전이 많이 자리하고 있는데, 여기서 낮 시간대 증가하는 태양광 발전 전력으로 인해 한빛 원자력발전소와 전력망에서 충돌하다 보니 양쪽 모두 출력제한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딜레마의 현실적인 해답이 바로 ‘원자력 잉여전력을 활용한 청정수소 생산’이다. 버려지는 전력으로 수소를 만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전력망 충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산업계에는 경쟁력 있는 국산 청정수소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정수소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철강, 시멘트, 정유·석유화학 등 우리나라 제조업의 핵심 기반 산업은 대량의 전력은 물론,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추가적인 청정수소가 필요하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인 확산으로 전력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원자력 발전의 특성을 활용해 전력과 청정수소를 동시에 공급하면, 전력 공급부터 수소 생산, 공급망 확대, 수요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에너지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윈스턴 처칠은 1910년대 영국 해군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전환하며 “석유의 안전과 확실성은 오직 다양성에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 공급처의 다각화를 통해 에너지 자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에너지 안보의 핵심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정립한 이러한 에너지 안보 개념은 10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유효하다.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풍부하고 안정적인 청정에너지가 필수적이지만, 청정수소 수입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국내 재생에너지 기반 수소 보급량도 아직 충분치 않다. 따라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원자력 청정수소 생산을 통해 청정 에너지원을 다변화하고, 에너지 자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진정한 에너지 안보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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