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 논설위원

 

다수결로 투신 강권하는 ‘오겜’

反민주 입법 폭주 민주당 연상

다수결이 민주주의라는 오해

 

머릿수 된다고 국가 흔들 법안

야당과 협의 없이 처리 안 돼

나치·유신도 다수결로 이뤄져

“토론해서 민주적으로 다수결로 결정한 거예요. 미안하지만 그냥 좀 죽어주세요.” ‘오징어게임 시즌3’에서 마지막 고공 생존 게임만 남겨 둔 9명 중 6명이 한편을 먹고 제일 약해 보이는 사람을 벼랑에서 밀어버리기로 하고 투신을 강권하며 한 대사인데, 인상적이었다. 그런 결정을 ‘다수결’ ‘민주적’이라고 태연히 말하는 배우들 연기가 별로 어색하지 않고, 외려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윤석열 탄핵과 이재명 대통령 당선 후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다수 의석을 앞세운 입법 폭주가 오버랩 되면서 그것을 빗댄 영화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결정도 다수결이면 민주적이라는 건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현실 정치에선 민주주의를 다수결주의로 이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지난 2일 당선된 정청래 민주당 대표도 그런 경우로 보인다. 그는 공영방송을 ‘노영(勞營)·민주당방송’으로 바꾸고, 검찰·사법 제도를 근본부터 뒤집는 대단히 중요한 법안의 제1야당을 배제한 처리를 다짐하면서 “헌법 제49조에 보면 국회 의사결정은 다수결로 정하라 이렇게 돼 있다. 이것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머릿수가 된다고 헌법과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나는 법을 마구잡이로 만들면 안 된다.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헌법 제49조는 국회 의사 진행 원칙을 규정한 것뿐이다. 정부 수립 이후 77년간 유지해온 국가 형사사법체계를 뿌리째 흔드는 입법을 하려면 야당과 협의, 검찰·사법부 등 관계기관과의 협의, 공청회 등을 통한 전문가 집단과의 숙의, 국민적 공감대 형성 등은 필수다. 다수결은 마지막 수단인데, 아예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도둑질하듯 속도전으로 해치울 일이 아니다.

정 대표는 당선 직후 “추석 전 검찰·언론·사법 개혁 작업을 폭풍처럼 몰아쳐서 전광석화처럼 끝내겠다”고 했는데, 이게 그럴 일인가. 문재인 정권의 ‘검수완박’으로 사건 처리 지연 등 국민 피해가 막심했는데, 아예 검찰청을 없애고 기소·공소유지 기능은 공소청을 신설해 맡기고, 수사권은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어 넘기는데, 행정안전부 아래에 둔다고 한다. 난립하는 수사기관을 통제·지휘·감독할 국가수사위원회는 어이없게도 국무총리실 산하에 둔다고 한다. 기존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더해 중수청까지 생기면 범죄 대응에 구멍이 생기는 건 아닌지, 권력에 더 취약해질 수사권의 중립성·독립성은 어떻게 담보할 건지, 형사소송법 체계와 충돌은 어떻게 정리할 건지 등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고민은 ‘1도’ 안 보인다.

민주당은 14명인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사법개혁이라며 추진하고 있다. 현 정원보다 더 많은 16명을 증원하겠다면서도 별다른 근거를 대지도 않는다. 민주당 입맛에 맞는 대법관의 대거 임명으로 사법부도 손아귀에 쥐려는 목적 이외엔 다른 설명이 어렵다. 삼권분립을 심각히 훼손하는 입법을 추진하면서 당사자인 사법부 의견수렴도 제대로 않는 것도 문제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 검수완박을 추진하면서 선거법 개정도 국민의힘을 배제한 채 정의당과 손잡고 일방으로 밀어붙였다. 국회 운영이나 선거에 관련된 입법을 야당과 협의해 하지 않는 건 몰상식을 넘어 민주주의 게임의 룰을 어기는 것이다. 하물며 사법부를 뒤흔드는 입법을 여당 단독으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하면 그게 바로 독재다.

다수결이라고 뭐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 이성적 토론과 설득, 숙의 과정 없이 힘으로만 밀어붙이면 정치는 실종되고 민주주의도 압살된다. 히틀러 나치 정권도 박정희 유신 독재도 다수결로 이뤄졌다. 민주당이 다수 야당 때 수많은 위헌적 포퓰리즘 입법은 물론, 헌법재판소에서 모두 기각된 무리한 탄핵을 머릿수로 밀어붙였다. 절대 의석의 집권당이 됐으면 국정에 대한 책임감과 현실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야당처럼 군다. 민주주의를 다수결주의로만 인식하면 정치는 지옥도가 된다. 염치, 양식, 관례, 전통 등 모든 미덕을 다 던져버리고 한 석이라도 더 얻기 위한 무한 극렬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

김세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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