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성진의 Deep Read - ‘트럼프 라운드’ 개막

 

美 관세전쟁으로 WTO체제 종언… 글로벌 공급망 불안·中 도전·쌍둥이적자 등 복합원인

지정학과 정치·경제 연계된 새 무역질서 시작… 경제안보에 토대한 전략적 대응 숙제로

세계 초강대국 미국이 전후 국제 자유무역의 규범으로 자리 잡아온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종언과 ‘트럼프 라운드’의 시작을 알렸다.

미국은 2024년 기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3.5%, 세계 무역의 11.0%를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최대 경제 대국이다. 그런 미국이 관세전쟁을 통해 세계 무역 질서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경제발전 패러다임과는 결이 확 다르다.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과거에는 경쟁력이 취약한 개발도상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부과했고, 선진국은 자유무역을 앞세워 시장을 넓혀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선진국이 스스로 무역 장벽을 세워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해외 산업을 국내로 이전해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자 하는 장기적 포석까지 포함하는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행보다.

인류는 산업혁명을 거치며 역사상 유례없는 삶의 질 향상을 이뤄냈다. 앵거스 매디슨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전인 1500~1820년 세계 1인당 GDP 연평균 증가율은 0.04%에 불과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인 1820~1992년에는 1.21%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 놀라운 성장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애덤 스미스가 제시한 분업의 원리, 데이비드 리카도가 정립한 비교우위이론, 그리고 자유경쟁이 결합해 국제분업과 자유무역의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유무역과 국제분업에 기반한 경제성장 전략은 1920년대 대공황을 전후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 미국은 1922년에 농업과 제조업 보호를 위해 포드니-매컴버 관세법을 제정해 관세를 인상했다.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자 1930년 제정된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기존 약 60개 품목에 부과되던 평균 13~15%의 관세율을 무려 60%까지 끌어올려, 세계 최고 수준의 무역 장벽을 세웠다.

결과는 참담했다. 주요 교역국들이 보복관세로 대응하면서 미국의 수출은 급격히 줄었고, 세계 무역량도 급감했다. 대공황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불황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 사건은 보호무역이 단기적 산업 보호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세계 경제와 자국 경제 모두에 심각한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남았다.

◇GATT-WTO 체제

국제사회는 보호무역의 폐해를 인식하고 1947년 제네바에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를 출범시켰다. 이 협정은 1995년 WTO 체제로 승계돼 다자간 무역 질서를 규정하는 핵심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다자간 협상이 쉽지 않을 때는 소수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무역 자유화의 범위를 넓혀왔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1930년대 보호무역의 악몽을 반복하지 않고 상호 번영을 위한 국제무역 질서를 추진하겠다는 공감대를 반영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영속할 것처럼 보였던 WTO 체제는 불안정성을 가져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을 초래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무역 질서는 경제정책뿐 아니라 정치나 기타 가치 요인과도 연계되는 방향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경제 규모 확대와 도발은 이런 상황에 기름을 부었다. 1980년 중국의 세계 GDP 비중은 1.6%, 미국은 26.6%였지만 2024년에는 각각 19.1%, 23.5%로 격차가 좁혀졌다. 세계 무역 비중 역시 1980년엔 중국 1.0%, 미국 12.2%였지만, 2024년에는 각각 12.5%, 11.0%로 역전됐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경제의 불안정성은 경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심화시켰다. ‘쌍둥이적자’는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없다. 경상수지는 1980년 이후 1980·1981·1991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적자였고 그 폭이 확대되는 추세다. 재정수지도 1980년 이후 1998~2001년을 제외하면 매년 적자였고 규모도 갈수록 커지는 중이다. 미국의 관세전쟁과 트럼프 라운드 공언은 이런 맥락에서 비롯됐다.

◇트럼프 라운드와 한국

수출주도 정책과 중화학공업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을 통해 자유무역의 혜택을 누려온 한국은 최근의 관세전쟁에서 경제적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는 국가 중 하나다. 2007년 한·미 FTA 타결을 통해 다른 국가에 비해 낮은 관세 구조를 갖춰 왔던 점, 전체 산업에서 관세 변동에 민감한 자동차·철강·전자 등 제조업 비중이 높은 점 등은 관세전쟁에서의 취약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한국은 지난달 말 미국과의 1차 관세협상을 타결했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이 추가 협상 과제로 남겨진 상태다.

일단 트럼프 라운드에 대비해 한국 경제는 관세 인상을 단기와 장기로 나누어 대응할 필요가 있다. 국내 경제 영향에 대해 자본시장연구원은 자동차와 철강에 25%, 보편관세에 10%를 적용하면 GDP가 0.5%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고, 국회예산정책처는 한국 15%, 중국 30% 관세 부과 시 실질 GDP가 0.02%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시나리오별 차이는 있지만, 수출과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효과가 불가피하다.

산업별로 보면, 관세 인상률이 높은 자동차는 미국 시장에서 일본산 및 유럽산과의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반도체산업의 경우 무관세 혜택이 미국 현지 생산품만 해당되는지, 미국 내 공장을 보유한 기업에도 적용되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쌀·소고기(월령 제한)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고, 방위비 인상 요구도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러한 변화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핵심은 장기적 영향과 이에 대한 대응이다. 미국은 단순히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수준을 넘어, 해외 기업을 자국으로 유치하고 미래 기술·경제 패권을 유지하려는 장기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한국도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예컨대 마스가(MASGA) 패키지는 조선산업의 미국 이전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어, 국내 조선산업 공동화를 가속화하고 일자리 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조건부 자유무역 시대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인 자유무역 시대가 저물고, 지정학·가치·정치·경제가 연계된 ‘조건부 자유무역’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경제안보를 기반으로 한 전략적 대응은 한국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중요한 숙제가 됐다.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전 한국국제경제학회장

■ 용어 설명

‘트럼프 라운드’는 WTO 체제를 벗어나 미국이 관세인상 압박을 지렛대로 양자 또는 소규모 다자 협상을 벌이는 새로운 무역 협상 방식과 체제.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 대표가 공언.

‘비교우위이론’은 기회비용이 낮은 재화에 특화해 생산하고 무역하는 것이 모든 국가에 이익이 된다는 이론. 데이비드 리카도가 제시한 개념으로 글로벌 자유무역 및 국제분업의 기초가 됨.

■ 세줄 요약

자유무역과 보호무역: 인류는 국제분업이론과 비교우위이론을 바탕으로 한 자유무역을 토대로 삶의 질을 향상시켜 옴. 1930년대 보호무역은 세계 경제와 자국 경제 모두에 심각한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

GATT-WTO 체제: GATT 체제와 이를 승계한 WTO 체제는 다자간 무역 질서를 규정하는 핵심 규범으로 자리 잡아.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 변화와 중국의 굴기, 미국 경제의 불안정성 등은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불러옴.

트럼프 라운드와 한국: 이제 전 세계적으로 ‘조건부 자유무역’ 시대가 도래 중. 트럼프 라운드는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커. 경제안보를 기반으로 하는 전략적 대응이 한국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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