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용 전국부장

정부가 35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하고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라는 급한 불은 껐다지만, 지역 경제와 제조업 노동자 입장에선 불길은 이제 막 번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재명 정부는 최선을 다했다며 자축하는 분위기다.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관련 대기업들도 “최악은 피했다”는 반응이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미국에서의 제품 생산 비중을 확 늘리고 싶어도 정부와 노조 눈치를 보느라 실행하지 못했다”면서 “우리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미국 현지화를 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와 여론이 형성된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무관세 혜택을 받던 우리 수출기업들이 일본과 같은 관세를 적용받게 됐다고는 하지만, 만약 미국 생산 비중을 일본 수준으로 늘린다면 경쟁력은 더 좋아질지도 모른다. 실제 우리 기업들은 미국 현지화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자동차를 예로 들자면 현재 현대차와 기아의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은 40% 초반대로 일본의 혼다(72%), 토요타(54%), 미국 GM(64%) 등보다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기업이 미국으로 떠나고 난 뒤다. 대미 투자 증가란 곧 국내 투자 여력 감소를 의미한다. 미국 현지화는 한국 공장 가동 중단과 고용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제조업 공동화가 불가피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때 세계를 이끈 한국의 철강·석유화학업계는 경영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이 여파로 산업도시인 포항, 여수 등은 경기 위축까지 경험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포항 경제가 복합 침체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석유화학단지가 들어선 여수·울산·서산 세무서에서 지난해 거둔 국세는 2021년에 비해 33%가량 줄었다. 올해 2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한국은 최근 8년간 미국에 16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8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에 투자가 됐다면 그만큼의 일자리가 만들어졌을 테니 일자리를 미국에 빼앗겼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 관세 협상을 계기로 미국이 한국 기업의 투자를 더 삼키는 만큼 미국으로의 일자리 유출은 가속화하고 지역 경제는 더 추락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동맹국이 보기엔 무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지만, 자국의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를 살리겠다는 집요함과 실행력은 이재명 대통령이 배울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눈엔 해외 생산 공장을 늘리는 애플도 외국 기업일 뿐이다. 우리 땅에서 우리 국민을 고용하는 기업만 한 애국 기업은 없다. 국민을 생각하는 정부라면 이 땅에 남아 있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해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마땅하다. 혹시라도 해외로 빠져나가려는 기업이 있다면 경쟁국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잡아야 한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엔 아직 이 같은 전략과 위기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법인세를 인상한 데 이어 노란봉투법, 두 번째 상법 개정안 등 줄줄이 기업을 부담스럽게 하는 일만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제조업 공동화와 일자리 유출을 막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과 기업 유인책 없이는 지역 경제의 미래는 더 어두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만용 전국부장
김만용 전국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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