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 논설위원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대중 수출 재개를 승인했다. 매출의 15%를 받는 조건으로 미국 기업인 엔비디아와 AMD의 저(低)사양 AI 칩 수출을 지난 8일부터 허용한 것이다. 아직 타결되지 못한 미·중 관세 협상에서도 핵심 쟁점인 AI 칩의 중국 수출 규제가 풀린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일단 한국에는 긍정적인 요인이다. 사양이 낮다고 해도 엔비디아의 반도체(H20) 수출이 재개되면 D램과 함께 AI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도 급증한다. HBM의 최대 공급원인 SK하이닉스는 물론, 삼성전자 역시 납품 물량 확대가 예상된다. 특히, 삼성전자의 숙원인 5세대 HBM 3E의 신규 공급 길이 마침내 열리는 효과도 기대된다. 엔비디아가 공급망 다변화 차원에서 납품 시기를 앞당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테슬라에 22조7000억 원 이상의 AI 칩 공급계약 수주에 이어, 휴대폰 경쟁자인 애플과 차세대 반도체 칩 공급에 합의하는 등 재도약을 활발히 모색하고 있다. 삼성전자로선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메모리 반도체 1위를 탈환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대목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수출 재개를 허용하면서 이례적으로 매출의 15%를 일종의 수출 통행세로 걷는다. 엔비디아 한 곳만 20억 달러(약 2조8000억 원)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엔비디아가 우리 업체에 부담을 전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도체의 중국 수출 때 매출의 15%를 떼는 미 통행세가 새 변수로 등장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선 전례 없는 조치라며 비판 일색이다. 일각에선 중국의 기술 유출 우려가 해소되지 않았다며, 록히드마틴의 최첨단 F-35 전투기도 돈만 내면 수출을 허용할 것이냐며 트럼프 행정부를 꼬집는 소리도 나온다.

한국으로선 미국의 새 규제가 K-반도체의 대중 수출 때도 적용될지 모를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 공장 추가 투자·신설을 추진 중인 만큼, 트럼프 행정부의 100% 관세 압박에선 벗어나 있지만, 새로 등장한 리스크에도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오는 25일 한미 정상회담은 이런 우려를 해소해야 하는 과제도 추가로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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