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트럼프 마음대로 부과된 관세

규칙 기반 국제 질서 훼손 심화

美 빠져도 자유무역 지속 필요

 

일본은 통상·안보 최적 파트너

訪日 때 CPTPP 가입 선언하고

한일 포괄적 협력틀 제시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관세로 미국을 해방시키겠다’고 선언한 뒤 SNS에 ‘협상과 성공의 황금 법칙은 황금을 쥔 자가 규칙을 만든다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말이 좋아 황금 룰이지 마음 내키는 대로 관세를 물리겠다는 선전포고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강자는 원하는 대로 하고, 약자는 그에 따른 고통을 당하게 된다’고 했는데, 트럼프 황금 법칙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격언이다.

트럼프식 일방주의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내년 11월 미국 중간선거 때까지는 위력을 발휘할 게 분명하다. 미 공화당이 상하원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그 기세가 일차적으로 꺾일 것이고, 2028년 대선은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최소한 1년 넘게 어려운 시기를 견디면서 미국 우선주의로 인해 규범에 기반한 국제질서가 파괴되지 않도록 자유주의 진영 국가들이 협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소수의 강대국이 작은 나라들을 제멋대로 대하는 무법(無法) 시대로 퇴행할 수 있다.

트럼프 1기 때 호주 총리였던 맬컴 턴불은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 ‘미국의 동맹국들은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에서 미국이 훼손하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해 자유 진영의 주요 국가들이 해야 할 일과 관련해 귀중한 경험을 공개해 눈길을 끈다. 그는 이 글에서 2017년 트럼프가 백악관 입성 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선언을 하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리더십을 발휘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확대하게 된 과정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턴불은 ‘TPP를 존속시키려 할 경우 트럼프가 불쾌하게 여길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아베에게 “언젠가 미국이 마음을 바꿀 수 있으니 그 가능성을 믿고 협정을 유지해나가자”고 설득했다. 그의 조언에 따라 TPP 수호 전사가 된 아베는 호주, 캐나다 등과 협력해 CPTPP로 전환시켰다. 이후 트럼프 2기 관세전쟁으로 세계무역기구(WTO)가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주요국들이 참여하는 다자 자유무역협정(FTA)으로서 CPTPP의 가치는 더 커지고 있다. 트럼프 임기 종료 후에도 미국의 복귀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자유무역 유지가 각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23∼24일 일본 방문을 앞두고 CPTPP 가입 필요성이 거듭 제기된다. 박근혜 정부가 우물쭈물하다 참여 기회를 놓친 데 이어 문재인 정부는 저울질만 하다 끝났는데 더 미루면 국익 자해가 된다는 논리다. 18∼20일 서울에서 열린 제33차 한일포럼에서 한일 양측 전문가들은 “트럼프 라운드 시대 CPTPP의 전략적 중요성이 더 커졌다”면서 “한국은 가입 신청을 하고 일본은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도 미국 피터슨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던 지난 5월 ‘한국·유럽연합(EU)의 CPTPP 동시 가입 필요성’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일본과 캐나다·호주·베트남·영국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이 협정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데, 한·EU가 참여하면 세계 GDP의 30%가 되기 때문에 가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이 빠졌더라도 주요 국가 간 자유무역으로 미국발 고율 관세 충격을 이겨낼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강자의 룰을 내세우지만 21세기는 고대 그리스가 멜로스를 힘으로 복속시켰던 시대가 아니다. 미국은 선거로 권력이 교체되는 나라이고, 트럼프 임기도 유한하다. 미·러 정상이 알래스카 담판을 하자 유럽 정상 7인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을 방문, 합동 회담을 갖고 압박한 게 대표적이다. 트럼프 1기 때 일본·호주가 다자 FTA를 살렸듯, 한일도 현재의 통상·안보 위기를 넘기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

이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 때 CPTPP 가입 의지를 공식화하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 현대화를 내걸고 추진하는 아시아 주둔 미군 재편에 대한 한일 공동 대응 방안도 협의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이라고 정의했는데, 이번 회담 때 수교 60주년을 맞은 양국 관계를 전방위로 업그레이드할 포괄적인 틀을 만든다면 금상첨화다. 그것이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

이미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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