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동권리옹호 Child First
초록우산 ‘어린이 뮤지컬’ 사업
대화 어려운 이주 배경 아동들
한국어 소통 역량 높이기 취지
직접 배우·스태프 역할 분담
자기 소개·꿈 얘기 하며 소통
“우리 팀이 생긴 것 같아요”
또래 친구들과 공감대 형성
“한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같이 작품을 만들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말을 더듬어 사람들 앞에 서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이주 배경 아동이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22년 6월 키르기스스탄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중도입국 아동 A의 얘기다. 그간 한국어 실력 부족, 감정 기복 등으로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A는 이제 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대화도 나눈다. 초록우산 어린이 뮤지컬 사업에 참여한 이후의 변화다.
어린이 뮤지컬은 초록우산 대구종합사회복지관에서 개발한 아동권리 기반 복지 사업이다. 지난해 기준 전국 다문화가정 학생 수가 19만3814명으로 전체 학생의 3.8%에 달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학교 부적응, 낮은 학업성취도, 높은 학업중단율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착안해 사업이 시작됐다.
다문화가정 학생에겐 공교육을 시작하는 데에도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학적 증빙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A의 경우에도 한국에 온 지 4개월 만에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이처럼 학교 입학 과정이 오래 걸리면서 한국어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다문화가정 학생도 적지 않다.
초록우산 어린이 뮤지컬 사업은 이러한 이주 배경 아동들의 한국어 소통 역량을 높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아이들이 뮤지컬을 통해 보다 쉽고, 즐겁게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핵심이다. 초록우산은 특히 대구 동구에 거주하는 이주 배경 아동을 비(非)이주 배경 아동 10여 명과 함께 팀을 이루게 했다. 또래와 소통의 시간을, 비이주 배경 아동에게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어른에게 일방적으로 한국어 배우는 것을 넘어서, 또래끼리 어울리며 자연스레 한국어를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뮤지컬은 철저히 아이들 중심으로 제작됐다. 뮤지컬 제목은 ‘스케치북’으로, 흰 도화지에 형형색색 그림을 그리듯 아이들이 배우부터 스태프까지 서로 역할을 분담해 직접 뮤지컬을 만들도록 했다. 뮤지컬 내용에도 아이들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았다. 또 뮤지컬 제작과 더불어 자기소개, 꿈 이야기 나누기, 활동게임 등 다양한 팀 빌딩 프로그램도 병행했다. 아동들이 국적이 아닌, 하나의 팀으로 묶일 수 있도록 돕는 취지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서로 어색해하고 대화도 잘 나누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 콜라겐이 들어간 젤리를 먹을 수 없는 한 아동을 위해 젤리를 초콜릿으로 바꿔주는 모습도 관찰됐다. 기초학습 부진, 한국어 소통 부족 등의 어려움을 겪던 이주 배경 아동 B는 “처음으로 우리 팀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린이 뮤지컬 활동은 가시적인 한국어 실력 향상으로도 이어졌다. 이주 배경 아동 12명을 대상으로 한국어소통능력 향상을 측정하는 ‘주관적 한국어 소통 능력’을 측정한 결과, 이주 배경 아동이 인식하는 한국어 수준이 평균 5점에서 9점으로 4점 높아진 것이다.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 대화가 잘되지 않던 B 양 역시 공연 막바지로 갈수록 부모님과 복지관 담당 직원 사이에서 통역을 자처할 정도로 실력이 좋아졌다고 한다.
이주 배경 아동의 권리를 지역적 의제로 높인 점도 눈에 띄는 성과다. 2024년 6∼11월 이주 배경 아동의 교육권 보장을 주제로 진행한 ‘교육공백 제로화 프로젝트’에는 총 1000여 명이 참여키도 했다. 그 외 총 37개 기관과 파트너십을 구축했고, 그중 20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진행했다. 대구 동구 지역 이주 배경 아동을 지원하기 위한 협의체도 발족됐다. 협의체 발족식에 참여한 한 학교 밖 이주 배경 청소년은 “한국에 와서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 몰랐다. 관계기관과 바로 연결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달라”고 말했다.
초록우산은 “이주 배경 아동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우리 어른들이 변화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초록우산은 “이주 배경 아동의 절박한 목소리를 세상에 공유하고 정책의 중심에 놓는 것이 재단의 과제라 생각한다”며 “어떠한 거창한 계획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에서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이번 사업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
김현아 기자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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