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윤 한양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해 김정은을 만나 달라”면서 “피스메이커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요청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올해 안에 그를 만나고 싶다”고 화답해 향후 미·북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북한은 이 대통령이 방미 기간에 언급했던 한반도 비핵화 구상을 ‘허망한 망상’이라고 일축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7일 논평에서 이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위선자” “대결광” “비핵화 망상증” 등 거친 표현으로 비난을 퍼부었다. 앞서 19일 노동당 부부장 김여정은 이 대통령의 대북 유화 발언에 “마디마디가 망상이고 개꿈”이라고 하는가 하면, 한국은 우리의 외교 상대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또, 한미 연합훈련을 침략전쟁 연습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 달라고 했다. 이렇듯 북한은 비핵화 대신 핵 군축 협상을 원한다. 하루 전인 18일 김정은은 ‘핵무장의 급진적 확대’와 중대조치를 예고한 바 있다.

김여정 담화의 핵심은 한미 연합훈련을 완전히 없애라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전략무기 한반도 투입, 한미 연합훈련의 영구중단을 주장해 왔다. 과거 문재인 정부도 남북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축소하거나 폐지했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 상황은 문 정부 초기 때와 다르다. 2017년 김정은 정권은 국제적으로 고립돼 미·북 협상을 위해 한국의 도움이 필요했었다. 북한은 문 정부 지원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했으며, 서신 왕래 수단까지 구축했다. 한국 관점에서는 북한 비핵화가 실패였지만, 북한이 볼 때는 성과였다.

현재 북한은 북·러 군사조약 체결과 파병을 통해 러시아와 밀착되고 있어 한껏 고무돼 있다. 더구나 오는 9월 3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릴 ‘항일전쟁 승전 80주년 기념 행사’ 열병식에 김정은의 참석을 확인함으로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및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3자 회동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트럼프를 맞상대하는 푸틴 대통령을 우군으로 확보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 파병의 대가로 첨단 군사 기술을 이전받고 있으며, 러시아와 경제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중국 역시 북한 편이다. 김정은은 한국 정부의 도움 없이도 트럼프 행정부와 접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추진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소 김정은에게 관심이 많다. 김여정의 담화와 한·미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김정은의 회담 실현 가능성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푸틴은 물론, 서방 국가 정상들과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다. 러·우 전쟁이 끝나면 트럼프 행정부의 다음 목표는 북한과의 협상이 될 것이다.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에 협상 조건으로 △핵 군축 △주한미군 철수 △한미 연합훈련 중단 등을 요구할 것이고, 그 조건이 충족되면 협상에 뛰어들 것이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 과정에서 푸틴의 손을 들어준 것처럼, 향후 미·북 협상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주장을 수용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이 정부는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강화하고 국방력 강화에 힘써야 한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한국의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각인시키고, 한반도 안정을 위한 한미동맹 증진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

엄태윤 한양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엄태윤 한양대 국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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