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 논설고문

 

트럼프 취향에 휘둘리는 경제

재고 덕분에 관세 역풍은 잠잠

갈수록 소비자 물가 급등 우려

 

생필품 스니크플레이션 현상

트럼프 “美 황금시대” 외치나

관세 역풍 먹구름 더욱 짙어져

지난 5월 13일, 취임 후 첫 순방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가 전통에 따라 아랍 커피를 내며 환대했지만, 그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트럼프는 형인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가 알코올 중독으로 요절한 이후 술·담배는 물론 커피조차 멀리해 왔다. 대신 그의 곁에는 늘 하루 12캔씩 마신다는 다이어트 콜라가 있다. 요즘 코카콜라만큼 친(親)트럼프 기업도 없다. 코카콜라는 원액을 애틀랜타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서 만들어 관세에서 자유롭다. 알루미늄 캔에 50% 관세가 붙자 즉각 플라스틱 용기로 방향을 틀었다. 트럼프의 취향에 맞춰 옥수수 과당 대신 사탕수수 설탕을 넣은 제품까지 만들었다. 트럼프의 취향에 따라 두 회사의 운명도 엇갈렸다. 스타벅스는 브라질산 원두에 50% 관세가 붙으면서 올 들어 주가가 5% 내렸다. 반면, 코카콜라 주가는 10% 올랐다. 냉혹한 돈의 논리다.

영국 왕실은 역사상 동일 인물을 두 차례 국빈 초청한 적이 없다. 트럼프는 이미 201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청으로 국빈방문을 했다. 하지만 지난 2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관례를 깼다. 찰스 3세 국왕을 설득해 두 번째 초청장을 받아낸 것이다. 스타머 총리는 백악관을 찾아가 “국왕 폐하의 서신을 갖고 왔다”며 품에서 초청장을 꺼냈다. 트럼프는 “찰스 국왕의 서명이 너무 아름답다”고 칭송하며 즉각 TV 카메라에 초청장을 공개했다. 그러고는 9월 국빈방문 수락과 함께 스타머 총리에게 세계에서 가장 낮은 10% 관세를 선물했다.

세계 경제가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과 기분에 따라 뒤흔들리는 풍경이다. 문제는 그 여파다. 미국경제학회(AEA)는 고율의 관세가 소비자 물가를 자극하고 노동시장에 충격을 줄 것이라 끊임없이 경고한다. 반면, 트럼프는 관세 부담은 외국 기업에 돌아가고, 미국에는 부(富)와 일자리를 가져올 것이라고 자신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중간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관세 실험이 6개월 지났지만, 미 경제는 붕괴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전년 대비 2.7% 상승에 그쳤다. 기업들이 재고 물량을 팔며 관세 부담을 자체적으로 흡수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 7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3.3%나 올라 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골드만삭스는 ‘CPI 안정-PPI 급등’을 시차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관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시작하면 물가상승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6월에는 미국 소비자가 관세 비용의 22%를 부담했지만 10월에는 67%를 부담할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태풍 전의 고요’라며 ‘머지않아 무역전쟁의 고통을 아프게 느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 소비자물가가 당초 전망치보다 1.8%포인트 더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요즘 미국의 카페와 베이커리에는 커피 중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에 이어 ‘스니크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살금살금(sneak)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브라질이 관세로 인해 원두 수출 가격을 올리자 커피값도 슬금슬금 따라 오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주로 수입해온 새우에 50% 관세가 붙자 미국 남부의 대표 요리인 ‘시림프 앤드 그리츠’에서 새우를 찾기 어려워졌다. 캐나다·멕시코에서 주로 수입해온 오이 등 신선채소 값이 뛰면서 미국 식탁에서 샐러드마저 사라질 판이다.

트럼프노믹스가 갈수록 불확실성과 불안이 짙어지면서 위험한 도박 쪽으로 흐르고 있다. 다급해진 트럼프는 미 연준의 리사 쿡 이사까지 해임하며 기준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 국채 금리가 치솟는 등 채권 시장의 발작이 심각하다. 미 연준의 독립성 상실로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이 무너지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개를 들고 있다. 자칫 물가와 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노믹스가 자기 발등을 찍으면서 미 연준의 9월 빅컷(대폭적인 금리 인하)도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더 이상 “미국의 황금시대가 왔다”는 트럼프의 장담을 믿기 어렵게 됐다. 갈수록 장밋빛 무지개 대신 짙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이철호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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