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권 논설위원
자칫 험난할 수 있었던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화기애애하게 시작해 훈훈하게 마무리된 데에는 ‘K-펜’이 큰 역할을 했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이 백악관 방명록을 쓸 때 옆에서 지켜보던 트럼프 대통령은 일반 펜보다 굵고 큰 서명 펜을 보며 “좋다(nice)”를 연발하며 탐냈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자 “영광”이라며 펜을 선물했다. 갖고 싶은 것을 ‘선물’로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싱글벙글했다. 환심계(計)는 완벽하게 통했다.
이 펜은 골프 퍼터, 거북선 모형, 카우보이 마가(MAGA) 모자 등으로 구성된 ‘공식 선물 3종 세트’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펜 이벤트가 각본에 없었던 ‘돌발 상황’이라고 했지만 믿기 힘들다. 미국 순방 한 달 반 전에 서울 문래동에 있는 수제 만년필 공방 ‘제나일’에, 둘레가 굵고 글씨도 크게 나오는 펜을 만들어 달라고 사전 주문했기 때문이다. 공방은 굵은 글씨 펜과 조금 가는 글씨 펜 등 2개를 납품했고,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향을 고려해 일부러 굵은 글씨 펜을 사용했다. 이 펜은 만년필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볼펜(ballpoint pen)이다. 공방이 원목을 깎아 만든 외형에 국내 문구 업체인 모나미 자회사의 볼펜 심을 넣었다. 조그마한 강철 볼과 볼을 감싸는 소켓으로 구성된 볼펜 닙(nib)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소수 국가만 생산할 정도로 기술력이 필요한 제품이다. 대통령실은 준비했던 나머지 한 개의 볼펜도 선물로 주고 왔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물 컬렉터로 유명하다. 카타르의 4억 달러(약 5600억 원)짜리 보잉 항공기 선물 논란에 대해 “공짜로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했을 정도다. 연방 정부 규정(480달러 이상 선물 국고 귀속) 위반 논란에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로부터 받은 황금 골프채는 행방이 묘연하다. 강한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선물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사익을 바라고 하면 아부지만 국가를 위한 것이라면 전략이다. 두 대통령이 좋은 출발을 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관계 강화를 위해 K-펜을 자주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직 한미 간에는 3500억 달러(약 487조 원) 대미 투자 등 통상과 관세, 외교안보 등에서 다듬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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